1년여 만에 특파원으로 도쿄에 다시 왔다. 중학생 시절 1년 반을 도쿄에서 보냈고 2004년부터 1년여 동안 연수생활을 했으니 이번이 세 번째 장기 체류다.
공교롭게도 세 차례 모두 인접한 동네에서 살게 됐다. ‘아자부(麻布)’ ‘미타(三田)’ 등 서울로 치면 신촌이나 이촌동쯤 되는 지역이다.
2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동네를 지나다 보면 새삼 깜짝 놀라곤 한다. 새로운 무엇을 발견해서가 아니다. 중학생 시절 봤던 거리와 건물이 한 세대를 지난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양은 물론 색깔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중학생 때 귀갓길에 군것질하곤 했던 꼬치구이를 바로 그 가게에서 다시 사 먹어 보니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파헤치고 부수고 새로 만드는 서울의 살풍경을 떠올리면 ‘위안’받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서울의 어디에 수십 년 동안 변치 않고 그 시절 그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가 있는지 모르겠다.
변치 않는 안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도쿄의 이 거리.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거기엔 끊임없이 보수하고 시대에 맞는 재질로 바꾸는 노력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건물의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허물고 다시 짓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거리는 작은 정성과 변화의 축적을 통해 살아남은 ‘생생한 것’들로 가득했다. 사람도 그랬다. TV에서는 한 세대, 두 세대 전의 출연진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한다. 나이가 들수록 관록이 붙고 사계에서 존경을 받는 분위기다.
모리 미쓰코(森光子)라는 할머니 배우는 86세의 나이에도 매일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고운 외모는 50대로 보인다. 청초한 이미지의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는 환갑을 넘겼지만 중년 남성 팬들에게는 여전히 ‘마음의 연인’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에서 20대 여성으로 분장한 연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들은 팬들과 더불어 친구처럼 늙어 가며 성숙해 가고 있었다.
사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노인들의 천국’이다. 단순히 고령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수많은 개인과 사회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이뤄 낸 소중한 결과물이다.
우선 노인들 스스로가 치열하게 노력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심포지엄에 가면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청중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가장 열심히 받아 적고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쪽도 노인들이다. 서점에서는 노인들의 ‘두뇌 훈련’ 관련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머리를 쓰는 연습을 계속함으로써 지능의 쇠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영화나 공연장에도 장년 이상의 관객이 적지 않다.
노인들의 경륜과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사회적 모색도 활발하다. 1947∼49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이른바 ‘단카이(團塊) 세대’의 60세 정년퇴직 시기를 앞두고 정년 연장과 재고용 시스템을 도입하는 흐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한국도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해 있다. 동네건 사람이건 쉽게 허물고 다시 짓는 것보다는 오래된 것이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 가는 지혜가 절실한 때가 아닐까.
쉰 살도 되기 전에 직장에서 사회에서 내몰리는 한국의 젊은 노인들. 선거 날 ‘집에서 쉬시라’는 소리를 듣는 60대들. 혹 ‘무사히’ 정년까지 채우고 은퇴했다 하더라도 문화적 사회적 인프라나 프로그램의 부재로 갈 곳이 없다는 한국 노인들의 탄식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노인들의 삶의 질은 오늘 내 부모가 겪는 현실이자 곧 닥쳐 올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서영아 도쿄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