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불치병 환자(최지우)와 바람둥이 남자(조한선)의 슬픈 사랑을 그린 로맨틱 멜로 ‘연리지’. 사진 제공 영화인
13일 개봉된 ‘연리지’는 주연 배우인 최지우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영화다. 목숨보다 사랑하던 연인과 불치병으로 헤어져야 한다는 줄기 설정은 물론이고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면면조차도, 그녀를 ‘지우 히메’(‘지우 공주’라는 뜻의 일본어)라는 별칭과 함께 일본에서 최고의 한류스타로 만들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겨울연가’와 퍽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 복제가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자신을 출세시킨 특정 이미지를 다시 갖고 나오는 것은 안전한 상업적 선택일 수 있다. 초점은, 오히려 자기 복제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단 한 발짝의 전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연리지’는 분명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지만, 최지우의 성공작으로 남기엔 어려울 것 같다. ‘연리지’는 최지우의 영화라기보다는 ‘지우 히메’의 영화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게임 벤처기업 사장인 민수(조한선)는 비 오는 날 우연히 혜원(최지우)을 차에 태우면서 그녀와 사귀게 된다. 바람둥이였던 민수는 혜원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일생에 한 번뿐인 사랑이 찾아왔음을 확신한다. 한편 혜원의 단짝친구 수진(서영희)과 민수의 선배 경민(최성국)도 사랑에 빠진다. 민수는 혜원에게 폐 기능이 멈출 수 있는 불치병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낙담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연리지’는 요즘 관객의 입맛에 맞춘 여러 가지 설정을 주도면밀하게 배치한 흔적이 역력하다. 경민과 수진의 아기자기한 러브스토리를 비중 있게 곁들임으로써 심심해 보일 수 있는 혜원과 민수의 사랑 이야기에 탄탄한 부목을 댔다. 게다가 연기력이 검증된 손현주와 진희경을 각각 혜원의 주치의와 간호사로, 주가 상승 중인 배우 현영을 민수의 스토커로 등장시켜 톡 쏘는 맛을 보완했다. 민수의 화려한 패션, 멋진 컨버터블 자동차, 화려한 레스토랑의 와인을 결들인 최고급 디너처럼 눈길을 붙잡아 두는 화려한 액세서리들도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연리지’는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애절한 러브스토리에 치중하는 동안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잃어버렸다. 그건 바로 ‘현실’이 갖는 공기다. ‘연리지’에서는 현실의 냄새가 존재하지 않는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생산하기 위해 완벽하게 직조된 하나의 가상공간만이 있을 따름이다. 대사들은 “바보야. 나 죽어” 혹은 “나 더 살고 싶어지면 어쩌지? 민수 씨랑 사랑하면 할수록 더 살고 싶어져”처럼 얄미울 정도로 순진한 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이 뜨겁되 관객은 느껴지지 않고 그들의 이별이 아프되 관객의 가슴을 울리지 않는 것도, 유리벽에 갇힌 동화 같은 러브스토리가 당도할 수밖에 없는 종착역인 것이다.
최지우는 창밖에 쏟아져 내리는 비를 순진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비를 뚫고 자신을 찾아온 남자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감동하는 ‘불치병 공주’의 이미지를 답습한다. 갑작스러운 민수의 입맞춤에 입술을 내어주면서 놀란 듯 토끼 눈을 뜨는 최지우의 모습은 ‘겨울연가’에서 이미 너무나도 익숙해진 트레이드 마크이다. 상대 남자 배우가 누구이든 간에 사랑에 빠진 그녀의 얼굴표정이 죄다 똑같은 것은, 한류 스타가 된 최지우가 빠진 일종의 딜레마일 것이다. 배우가 자신을 출세시킨 이미지를 뿌리치기란,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연리지’의 새로운 발견은 조한선이다. 그는 전작 ‘늑대의 유혹’에 비해 깜짝 놀랄 정도로 존재감이 늘어났고 화면을 장악하는 능력이나 성적인 매력은 이제 막 개화하는 꽃처럼 에너지가 충만해 있다.
‘연리지(連理枝)’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가 붙어 하나의 나무가 되어가는 자연 현상. 김성중 감독의 장편 데뷔작.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