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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X파일]“도박꾼의 뇌를 찍어라” 카지노 뺨치는 실험실

입력 | 2006-04-14 03:01:00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밝히기 위해 돈을 따거나 잃는 순간 뇌의 영상을 잡아내고 있는 정재승 교수. 주사위를 던지며 돈을 걸어 상대방을 파산시키는 ‘모노폴리’ 게임이 실험도구의 하나다. 사진 제공 KAIST


“룰렛보다는 블랙잭이 더 낫지 않을까요?”

“좀 더 극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행운의 수레바퀴’ 같은 걸 이용해 보면 어떨까요?”

요즘 우리 연구실 대학원생들은 결과가 불확실한 선택 상황을 만들고 극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게임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내 연구노트에는 가위바위보에서부터 모노폴리까지 온갖 게임들의 규칙이 빼곡히 적혀 있고, 우리 연구실의 그룹 미팅은 점점 카지노 운영자의 미팅처럼 돼 가고 있다.

우리 연구실이 도박 게임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판돈을 걸고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고 선택을 하는 순간 과연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일찍이 파스칼은 ‘도박을 즐기는 모든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을 거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들의 삶 그 자체가 바로 도박이 아니던가! 내 앞에는 늘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고, 나는 무언가 반드시 선택해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택을 통해 돌아올 대가를 잘 따져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안정적으로 작은 돈을 버는 것보다 확률은 낮지만 큰돈을 벌기 위해 모험을 하기도 하고, 참고 기다리면 더 큰 이익이 오는 걸 알지만 눈앞의 작은 떡에 넘어가기도 한다. 놀랍게도 이런 복잡한 선택 과정이 뇌에서 어떻게 수행되는지 연구하는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블랙잭이 나오고 잭폿이 터지는 순간 우리 뇌의 어느 부분에서 환희를 만끽하는 것일까? 플러시를 들고 올인을 했는데 포카드를 쥔 상대에게 진 순간, 내가 느끼는 절망감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요즘 우리 연구실 학생들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안에서 실험참가자들과 도박을 하면서, 그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환희와 실망을 느끼는 순간을 뇌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실험참가자는 판돈을 걸 수도 있고, 이기면 거액을 챙길 수도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게 하고 무모한 결정을 유도하는지 이제 곧 근사한 사진이 도착할 것이다. 우리의 연구를 위협하는 유일한 걱정은 ‘전날 돼지꿈을 꾸고 온 실험참가자들’뿐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jsjeong@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