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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암도 향학열 막을 순 없죠”

입력 | 2006-04-14 06:49:00


충남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의 유용자(48·여) 씨. 그는 아침마다 설레임 속에 깨어나 책가방을 챙긴 뒤 집 근처의 갈산중학교로 향한다.

유 씨는 올해 이 학교에 입학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33년 만에 중학생이 됐다.

당시 그의 부모는 아들 4명을 가르치기 위해 유 씨의 진학을 막았다.

그는 도시로 나가 공장을 전전하며 돈을 벌면서도 학업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남편 김응렬(50) 씨와 결혼할 때도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살림을 하고 자녀를 키우느라 바쁜 생활이 계속되면서 공부하겠다는 꿈을 한동안 접었다.

수년 전 두 자녀를 대학에 보낸 뒤 남편과 함께 자신의 고향으로 이사했다. 33년 전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갈산중학교가 집 옆에 보이자 향학열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유방암(1기)이 찾아오면서 유 씨의 마음은 급해졌다. “이러다 병세라도 악화되면 꿈은 한(恨)으로 변하겠지….”

그는 용기를 내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박진규 교장은 “다른 학생과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 검정고시 등 다른 방법을 권유했지만 워낙 간곡하게 간청을 해왔다”고 말했다.

어느 교사는 첫 수업 때 유 씨가 학생인 줄 모르고 “학부모님은 이제 좀 나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유 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학교 수업 6시간을 모두 소화한다. 집에서 예습복습을 하느라 자정까지 책상을 떠나지 않는다.

11개 정규 과목 외에 희망자에 한해서 실시하는 특기적성 교육을 중국어 일본어 등 두 과목이나 신청했다.

“굉장히 수줍음이 많아요. 또 사려도 깊어요. 인격적으로는 저희의 교사인걸요.”

담임 안은경(35) 교사는 “늦은 나이에 암과 투병하면서 향학열을 불태우는 유 씨는 다른 학생에게 공부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인생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씨는 “학교를 오가고 수업을 받을 때 가슴 속의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라며 “배움에 대한 열망에도 나이가 많아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문을 두드리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