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거리로 나선다. 이에 맞서는 ‘바른 FTA 실현 국민운동본부’는 내일 공식 출범한다. 앞의 것에는 양대 노총을 비롯해 환경운동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270개 진보계열 노동 시민 사회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뒤의 것에는 선진화정책운동, 기독교 사회책임 등 ‘뉴라이트’ 계열 단체가 주축이다. 얼핏 보아 ‘친노(親盧)-반노(反盧)’가 뒤집힌 듯한 양상이다.
‘친노의 반란(反亂)’은 정태인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의 입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미 FTA는 대연정(大聯政)에 이은 대패착(大敗着)”이라고 단언했다. 개혁이 지지부진하니 갑갑한 마음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적(敵)과의 동침을 시도했다가 망신을 자초하더니 이번에는 엄청난 적과 서슴없이 손을 잡았다는 얘기다.
정 씨나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운동권 출신 386들이 보기에는 지난날 자신들의 ‘도구’로 쓰임 받던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난 적’인 미국과 손을 잡는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그들로서는 존재의 위기가 아닐 수 없고, 따라서 한미 FTA는 당연히 저지돼야 한다.
물론 한미 FTA가 좋은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의 분석대로, 한미 FTA로 인한 피해 예상 부문의 개방 전략과 국내 산업 정책이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미국에)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겠다”고 했지만 흰소리 칠 일은 아니다. 협상 전략이 치밀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 씨의 주장처럼 노 대통령이 내세울 게 마땅찮은 정권의 업적을 위해 한미 FTA를 졸속 추진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재앙(災殃)이 될지 모른다. 그 점에서 정 씨의 ‘폭로’에는 덮고 갈 수 없는 문제를 드러냈다는 유효한 측면도 있다.
한미 FTA에는 득실(得失)이 나뉘고 이해(利害)가 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눈앞의 경제적 이해득실만 따져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그보다는 21세기 글로벌화, 개방화라는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접근하고 국민의 공감을 이뤄 내야 한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국내 농업 축산업이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보건 법률 금융 등 서비스 부문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 결과 양극화가 심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 FTA를 저지한다고 해서 이미 세계화 체제에 편입된 한국 경제가 자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근본적으로 빈곤화의 문제인 양극화가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아지리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성장 지체로 빈곤층의 어려움이 더 커질 위험성이 높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이미 80%를 넘어섰다. 문을 걸어 잠가서는 성장은커녕 미래의 생존(生存)조차 담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우리가 여유 있게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받아야 할 카드라면 능동적 주체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 한미 FTA를 지렛대로 해서 향후 한중일 3각 FTA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다.
예상하기조차 싫은 최악의 경우는 우리 내부 이해집단의 반발과 대선을 앞둔 정치적 변수가 맞물리면서 한미 FTA가 중도에 좌초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내의 반미(反美) 감정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고 있는 한미 동맹을 치명적으로 악화시킬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미국도 협상에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만 매달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내부 반발은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는 자세로 한미 FTA를 성공시켜야 한다. 왜 한미 FTA를 서둘러야 하는지, 국민을 설득하고 다수의 동의를 얻어 내야 한다. 협상 전략을 점검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모든 걸 공개하지는 못하더라도 협상의 투명성으로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한미 FTA는 ‘친노-반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