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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발’ 떨어지는 약, 75% 퇴출

입력 | 2006-04-17 03:03:00


국내 ‘빅5’ 제약회사인 A사의 K차장은 요즘 무척 바쁘다.

그의 업무는 정부의 제약정책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 최근엔 각종 보고서를 만들고 공무원들을 만나느라 “정말 눈코 뜰 새 없다”고 토로했다.

조만간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지원받기가 힘들어지고 주 수입원인 ‘카피약’(특허권이 만료된 의약품을 복제해 만든 약) 제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치료 효과가 높은 의약품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주는 ‘포지티브 리스트’제도(선별 목록제)를 상반기 중 도입할 방침이다.

더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되면 미국이 신약특허권 보호 강화를 요구할 것이 분명해 국내 제약업계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제약회사의 경영 환경이 ‘폭풍 전야’라는 얘기도 나온다.

○보험 적용되는 의약품 대거 줄어든다

지금은 대부분의 의약품이 보험의약품 목록에 올라 있어 건강보험에서 약값을 지원받는다. 일부만 적용이 안 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바뀐다. 제약사가 약의 효능을 입증하는 자료를 내면 평가를 거쳐 치료 효과가 높은 의약품만 보험의약품 목록에 올리는 제도다.

이렇게 제도가 바뀌는 것은 성분과 효능이 똑같은 의약품이 수십 개씩이나 보험의약품으로 지정돼 약제비 부담이 커지면서 건강보험재정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국내 전체 의료비 가운데 약제비 비중은 25%를 넘는다. 반면 외국은 이 비중이 15%에 그친다.

보건복지부 박인석 보험급여기획팀장은 “5월 초까지 구체방안을 발표하고 하반기 본격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 허가받는 신약부터 적용한 다음에 전체 약품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바뀌면 2만여 개의 보험의약품 가운데 5000개 정도만 살아남을 것으로 제약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보험에서 약값을 지원받지 못하는 약은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 확실하다. 군소 업체들엔 엄청난 타격이다.

중소제약사인 B사 관계자는 “정부는 신약 경쟁력을 갖추라지만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군소 업체들엔 꿈같은 얘기”라며 “살아남기 위해선 리베이트나 뒷거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책이 없는 셈이어서 중소 제약회사의 줄도산도 예상된다.

○한미 FTA 불똥…카피약 생산도 제동

대형 제약회사들엔 한미 FTA 협상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미국이 한국 제약사들의 주 수입원인 카피약 생산에 제동을 걸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대형 제약회사들이 앞다퉈 대책팀을 만들어 협상에 활용할 인맥 구축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약회사들은 자료 독점권과 특허 기간 연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료 독점권은 신약 판매허가를 받기 위해 보건당국에 제출한 자료를 일정 기간 이용할 수 없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제약회사의 카피약 생산 및 허가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FTA 협상을 하면서 자료 독점권을 5년까지 보장하도록 했다.

특허기간 연장은 의약품 안전성 시험에 걸리는 시간을 특허기간에 포함시키자는 것. 국내 제약사로선 그만큼 카피약을 팔 수 있는 시기가 늦춰질 수밖에 없어 고민이다.

업계에선 “8조 원짜리 의약품 시장을 통째로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