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의 전시공간으로 쓰이게 될 ‘SK파빌롱’ 조감도. 사진 제공 바다미술제 사무국
9월에 막이 오르는 2006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의 류병학 전시감독은 요즘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천신만고 끝에 행사의 본무대인 전시공간을 지어 주겠다는 대기업의 약속을 받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던 것도 잠시였다. 늦어도 이달 중에는 공사에 들어가야 전시 일정에 차질이 없을텐데 아직까지도 건물이 들어설 부지가 결정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SK건설에 협찬을 요청했고, 40여 차례 미팅 끝에 ‘SK파빌롱’이란 이름으로 10억 원 이상 들어가는 건축 작품을 기증받기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미술제가 끝난 뒤에는 지역 작가들을 위한 새롭고 실험적인 전시공간으로 부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갈 건물입니다. 국제예술행사에 대기업이 건물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없는 일인데 막상 건축물이 들어설 땅을 구하지 못해 협찬 자체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생활 속의 예술(Art in life)’을 주제로 열리는 올해 바다미술제의 기획은 참신하다. ‘아트는 생활의 미래다’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퍼블릭 퍼니처’, ‘생활은 아트의 미래다’라는 주제의 ‘리빙 퍼니처’, 남녀노소가 참여할 수 있는 ‘샌드 아트’ 등 3부로 나뉜다.
퍼블릭 퍼니처는 공공미술과 스트리트 퍼니처를 접목한 신조어. 가로등과 벤치, 버스정류소 등 기존 거리 시설물들이 아티스트가 제작한 작품으로 교체될 계획이다.
‘리빙 퍼니처’는 단순한 직육면체 스타일(20m×30m×6m)의 첨단 주거공간인 ‘SK파빌롱’에서 선보일 예정. 한국 중국 일본 작가 120명이 가구를 비롯한 집안의 모든 생활용품을 미술품으로 채우는 전시공간과 사무실, 휴게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이미 대강의 설계까지 마쳤다.
파빌롱의 건립 부지는 행사 장소인 해운대해수욕장과 주변 달맞이 고개 산책로에서 찾고 있다. 미술제 사무국 측은 1월부터 부지확보를 위해 부산시와 해운대구청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왔지만 시와 구가 서로 미루며 지금까지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바다미술제를 통해 기업과 예술이 협력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지역사회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입을 모은다.
20년 넘게 독일에 살면서 비평가와 독립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해 온 류 감독. 2006 부산비엔날레 때문에 지난해 8월부터 가족들과 생이별을 감수하고 뛰어든 일이었지만 그의 한숨은 하루하루 깊어갈 뿐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