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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代째 양명학 연구 김세정 교수 ‘왕양명의 생명철학’ 펴내

입력 | 2006-04-18 02:58:00


한국에서 양명학(陽明學)은 아직도 낯선 학문이다. 한국은 성리학의 전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리학이 주희 등 송대의 유학자들이 창안한 유학이라면, 양명학은 왕양명 등 명대 유학자들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유학이다.

도학(道學) 또는 이학(理學)으로 불리는 성리학은 선험적이고 고정적 도덕원리(진리)가 존재하며 인간은 이를 깨친 성인의 말씀을 통해 이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경전 공부’를 중시한다.

이에 비해 심학(心學)이라 불리는 양명학은 이런 진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지혜(양지·良知)이며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는 능력(양능·良能)으로 보기 때문에 그 인식보다는 실천을 더 중시한다.

중국과 일본은 양명학을 성리학보다 진화한 유학의 형태로 수용했다. 그러나 퇴계 이황이 이를 이단으로 규정한 조선에서는 정제두(1649∼1736)를 중심으로 한 강화학파를 통해서 명맥만 이어지다 마지막 계승자라 할 위당 정인보(1893∼1950)가 납북된 이후 멸실되다시피 했다.

김세정(39·동양철학·사진) 충남대 교수는 한국 유학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양명학을 2대째 연구하고 있는 학자다. 그의 부친인 김길락 충남대 명예교수는 송하경 성균관대 교수, 송재운 동국대 교수와 함께 1970년대 이후 한국 양명학 연구를 부활시킨 3명의 양명학자 중 한 명에 꼽힌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그 학문적 가치에 눈을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화학파의 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에 더 주력한 탓에 상대적으로 이론적 연구는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 양명학 연구는 중국과 일본의 양명학 연구를 정리하고 소화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교수는 최근 ‘왕양명의 생명철학’(청계)을 펴내며 그런 한국 양명학의 새로운 주체적 도약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이 책에서 양명학의 핵심개념인 양지를 ‘인간이 천지만물과 감응하는 주체이자 천지만물의 생명 손상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의 주체’라고 적극 해석함으로써 현대적 생명철학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서구의 생명철학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지나쳐 생태계 보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인간까지 희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양명학은 천지만물과 인간이 하나라는 천지만물일체설을 주장하면서도 사람을 천지만물의 마음이자 주체로 인정합니다. 또 서구 생명철학은 뇌사나 장기이식, 낙태문제 등에서 임신 몇 개월 된 태아부터 생명체냐는 식의 기계적 기준을 설정하려 하지만 양명학의 양지는 그런 고정적 인식을 벗어나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 따른 능동적이고 실천적 해석을 강조합니다.”

그는 이런 시대적 맥락에 투철한 현실 참여성과 다양한 사상을 종합하는 능력을 다른 동양사상과 차별화되는 유학의 특징으로 꼽는다.

“유학은 시대적 맥락에 따라 계속 거듭 태어납니다. 공맹사상 중심의 선진시대 유교와 달리 성리학은 불교에서 이(理)개념을, 도교에서 기(氣)개념을 빌려오는 식으로 불교와 도교를 통합하면서 그 극복을 주장하는 신유교로 재탄생합니다. 또 양명학은 근대화를 위해 필요한 주체적 개인과 자유 평등의 개념을 발견하는 현대유학으로 재탄생합니다. 마찬가지로 탈근대의 시대 양명학은 다시 서구철학을 종합하되 그를 극복할 수 있는 ‘미래유학’으로 다시 탄생해야 합니다.”

과연 성리학의 나라인 한국에서 그런 미래유학이 탄생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늘 학문이 대성하려면 최소 3대는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1세대, 저를 포함해 현재 50여 명 되는 학자들이 2세대라면 지금 학생들인 저희 다음 세대가 3세대에 해당할 텐데 그때쯤이면 좋은 열매를 맺지 않겠습니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