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계열사 부채 탕감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왼쪽)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이 17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동주 기자
서울중앙지법 이종석(李悰錫)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박상배(朴相培)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李成根) 산은캐피탈 사장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17일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진술 이외에 피의자들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한 데다 피의자들이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어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보장받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퇴임한 지 오래된 박 전 부총재와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한 이 사장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적어 보인다”며 “피의자들의 경력과 지위, 가족관계 등으로 미뤄 볼 때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전 부총재 등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에서 압수한 ‘위아 채무탕감 보고서’를 간접 증거로 제시했으나 법원은 이 자료가 구속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보고서에는 현대차그룹이 위아의 채무탕감 추진이 어렵게 되자 정부 감독 당국과 산은 최고경영진에 대해 로비를 하려 한 정황과 이를 위해 용처를 묻지 않는 비자금을 줬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범죄 소명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영장이 기각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각 사유를 면밀히 분석하고 보강 조사를 거쳐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