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침입 중단하라”일본 해양탐사선의 독도해역 진입 계획 규탄 시위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라이트코리아, 뉴라이트청년연합, 애국국민운동대연합, 활빈단 등 우익단체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참석자들이 일본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19세기 말 운요(雲揚)호사건을 알지 않느냐. 그 사건 때도 일본은 해로 조사를 명분으로 들어왔다. 이번에 측량선 들어오는 것이 이 같은 역사적 뿌리와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일본의 독도 근처 해역 수로측량 계획과 관련한 관계부처 장관급 대책회의가 끝난 뒤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운요호사건은 1875년 9월 무력시위를 통해 조선의 개항(開港)을 끌어내려는 일본이 해로 조사를 구실로 강화도 앞바다에 군함 운요호를 파견해 조선 초병과 무력 충돌을 벌인 사건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처럼 한일 과거사에 대한 역사적 성찰에 대해서도 깊은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그만큼 정부는 이번 문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
▽‘불상사’ 대책=17일 오후 차분하게 대책회의 브리핑을 해 나가던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독도문제가 나오자 주저 없이 “절대 영토문제에 대한 타협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절대’란 말은 외교관에게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비외교적 언사’다.
이날 오전에 열린 장관급 대책회의는 일본 탐사선이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로 밀고 들어올 경우의 대비책까지 상세히 논의할 만큼 긴박했다. 당국자가 “안보와 관련된다고 상상할 수 있는 부처는 모두 참여했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회의 내용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가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를 언급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불상사’는 일본 탐사선이 한국 EEZ를 무단으로 침범하면 이를 막는 과정에서 한일 간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회의에 국방부 장관과 국가정보원 관계자 등이 참석한 것은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뒀다는 의미다.
▽‘조용한 외교’의 위기=물리적 충돌 상황이 현실화되면 그동안 독도문제에서 정부가 유지해 온 ‘조용한 외교’ 원칙은 정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는 가능한 한 이 같은 상황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정부의 대응기조는 어디까지나 ‘외교적으로 해결하되 일본이 도발하면 강력 응징에 나선다’는 것이다. 장관급 대책회의가 청와대에서 송민순(宋旻淳)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주재로 열렸지만 대(對)언론 창구를 외교통상부로 일원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는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 국정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지만 정부는 일본 측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참석자들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처럼 문제의 확대를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독도영유권 분쟁이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정부가 아직 한일 간에 매듭지어지지 않은 EEZ 경계획정 협상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를 의식한 포석이다. 이는 이번 사태를 EEZ 문제로 국한시키는 동시에 유사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5000t급 삼봉호
하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으로서도 국내의 대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독도 문제 표면화가 일본의 의도에 말리는 것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두고 봐라, 강하게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정부 ‘EEZ 매뉴얼’ 조속 마련
6가지 시나리오 ‘독도 매뉴얼’엔 日침공상황 없어
정부는 한국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의 일본 탐사선의 수로측량 시도에 강력 대처하기 위해 별도의 ‘EEZ 매뉴얼’을 마련해 단계별로 대응하기로 했다. EEZ 매뉴얼의 모델은 ‘독도 위기관리 매뉴얼’로 이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가 지난해 말 완성한 272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 중 하나다.
독도 매뉴얼은 세부 내용이 기밀로 분류되어 있지만 일본 우익단체 등 민간인들이 독도 상륙을 시도하거나 독도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6가지 유형의 우발 사태에 대한 대응방법과 절차를 시나리오로 작성한 것.
여기엔 한국 해양경찰청의 경비정을 동원해 차단하는 방법 등이 명시돼 있다. 이외에 일본 정부의 선박이나 항공기가 영해나 영공을 침범해 독도에 접근하는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매뉴얼에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침공하는 군사적 상황은 이 매뉴얼에 빠져 있다.
특히 이번처럼 일본 탐사선이 수로 측량을 명분으로 한국의 EEZ를 침범하는 경우는 미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독도 매뉴얼엔 대응 방안이 없었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말 완성된 독도 매뉴얼은 주로 우익단체의 침입에 대한 대비책이었다”며 “그 이후 이번 사태와 비슷한 해상 분쟁을 노린 일본의 대응을 상정한 독도 매뉴얼을 추가로 준비해왔고 조속히 이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양경찰청은 평소 동해 해역을 경비하는 5000t급 삼봉호를 이날 EEZ에 배치하고 서·남해안 해상 경비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3000t급을 포함한 경비함 8척을 EEZ 주변에 투입하기로 했다.
해경은 우선 일본 탐사선이 EEZ 진입을 시도할 경우 1차로 불법행위임을 경고한 뒤 돌려보낼 방침이지만 일본 탐사선이 진입을 강행할 경우 나포하는 강경책까지 검토하고 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日, 1978년 울릉도주변 해저 ‘쓰시마 분지’ 국제 등록
한국 ‘울릉분지’ 등록 막으려 도발
일본이 독도 인근 해역에서 수로(水路) 측량을 추진하는 것은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로 측량이란 선박이 다니는 바닷길의 수심을 잰다는 뜻으로 최근에는 이를 통해 해저 지형까지 분석한다.
일본은 한국이 해저에 관심을 갖기도 전에 이미 동해의 해저 지형에 일본 이름을 붙여 국제기구에 등록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 1978년 ‘쓰시마(對馬) 분지’로 등록한 울릉분지.
울릉분지는 울릉도와 독도 남측에서 강원도 앞바다에 이르는 수심 1000∼2000m의 광활한 해저 분지다.
2002년 출범한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지명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울릉분지라 이름 붙였다. 해양지명위원회는 이 밖에 동해 일대 해역 17곳의 해저 산과 분지에 대해 한국 이름을 붙이고 이를 12월 7일 관보에 게재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 이름들을 6월 21일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수로기구(IHO) 산하 해저지명소위원회에 상정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해저지명소위원회가 해저 지명을 심의 결정하면 IHO에서 발간하는 세계해저지형도에 표기돼 국제적으로 통용된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최근 울릉분지를 포함해 독도 인근 해저 지형에 대한 한국 이름을 IHO에 등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독도 인근 해역의 수로 측량에 나서기로 했다.
독도 인근 해역은 한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이 지역에 대한 수로 측량을 공식화해 한국 이름 등록을 차단하는 한편 양국간 EEZ 경계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 분쟁화해 국제법정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한국이 4년간 지형조사 대안 제시위해 탐사추진”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무단 탐사하겠다고 밝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대해서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사태의 원인을 한국에 떠넘기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17일 일본 정부의 대응방침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탐사시기 등이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서로 냉정하게 생각해 국제법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
또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차관은 “쌍방의 EEZ 주장이 중복되는 해역에서 양국은 이웃나라로서 원활히 조사할 수 있도록 사전 통보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일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주장이 중복되는 해역에서 지난 4년간 해저지형을 조사해 왔다”면서 “일본이 이번에 수로측량을 하는 목적은 6월 독일에서 열릴 해저지형 명칭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주장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