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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흔적은 사라지지만 열정은 식지 않더라

입력 | 2006-04-19 03:01:00

김창영 작 'Sand Play'


일본에서 활동 중인 작가 김창영(49) 씨의 ‘Sand Play-from where to where’전이 24일까지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영덕화랑. 안으로 들어가면 손가락으로 긁은 흔적과 무수한 발자국이 찍힌 모랫바닥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한 30여 점의 모래그림들이 반겨준다.

언뜻 보기엔 간단해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엄청난 노동집약적 과정을 거쳐 탄생된 작품들이다. 먼저 화면에 일정한 두께로 모래를 균일하게 바른다. 모래가 마르면 화면 위에 한땀 한땀 수를 놓듯 작고 가느다란 붓으로 점을 찍어 흔적의 음영을 묘사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하루 10시간 일해야 손바닥만 한 크기를 그릴 수 있다. 요코하마에 살고 있는 작가는 매일 집 근처 화실에 출근해 오전 6시 반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어깨가 아파서 천장에 줄을 매달아 놓고 팔을 끼워서 작업하다가, 요즘엔 팔 받침대를 만들어 팔을 올려놓고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하루 종일 작업하다 밖에 나가면 눈이 어질어질하고 세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14일 오프닝 행사에서 만난 작가 김 씨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프로는 그 경지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닷가에 생겼다 사라지는 인간의 흔적을 보면서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서 오는 무상함, 허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매체로 모래를 선택했다. 극사실주의 작가들은 대개 사진을 찍고 그것을 그리지만 그는 기억 속에 남은 이미지로 작업을 한다.

“동양화처럼 한번 점을 찍고 나면 고칠 수 없어요. 그래서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죠. 다행히 아직까진 작품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서 지루한 줄 모르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하하.”

모래 위에 남은 인간의 흔적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허구다. 모래(실체)에다 흔적(허구)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허와 실이 한 화면에 존재하고, 극과 극을 조화시킨다는 점에서 동양적 사유를 느끼게 한다. 02-544-8481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