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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카페]울화통 中企人들

입력 | 2006-04-20 03:06:00


《또 그랬습니다. 지난번엔 정치인들이 그러더니 이번엔 정부 산하기관들이…. 바쁜 사람 불러 놓고 자기들만 얘기하곤 끝. 말 좀 하려면 “짧게”. 토론 좀 하려면 “밥 좀 먹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내가 그랬지? 나도 바쁘다고!”》

심리적 저항선이라던 ‘달러당 원화 환율 950원 선’이 19일 끝내 허물어졌습니다. 원화가치는 더 올랐다는 뜻이죠.

국제유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이고 있고 국제 원자재 가격 역시 생각만 해도 뒷골이 땅길 지경입니다. 수출 중소기업인들은 원화가치 유가 원자재 값 등 ‘삼중고(三重苦)’의 3고(高) 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 나가고 있습니다.

때마침 이날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수출중소기업 애로 해소를 위한 민관합동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중소기업인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자리였습니다.

행사에는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을 비롯해 재정경제부, 노동부, 중소기업청의 고위 관리와 KOTRA, 한국수출보험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수출지원기관장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중소기업인들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인사들인 만큼 알찬 토론을 기대할 만했습니다.

먼저 산자부 무역담당국장의 ‘최근 대외수출 여건 악화에 대한 실태 설명이 10여 분 있었습니다. 중소기업 수출 둔화 원인이 해외 마케팅 능력 부족 때문이라는 요지의 그다지 새롭지 않은 분석이었습니다.

이어 수출보험공사, KOTRA,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소기업 지원대책 발표가 차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중소기업 진흥대책은 그동안 누차 언론에 보도됐던 내용의 재탕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찬 토론을 기대했던 중소기업 대표들의 표정에서 지루함이 묻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정작 중소기업인들이 고충을 토론하는 자리는 점심식사와 함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40여 분간 진행됐습니다.

모처럼 발언 기회를 얻은 어느 중소기업인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라면 저 혼자 24시간을 이야기해도 모자란다”며 “매번 이런 자리에서 고충을 말하지만 대체 무엇이 개선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중소기업 대표는 불합리한 관세환급 제도의 개선 가능성을 묻다가 시간 부족을 이유로 제지당하는가 하면 일부 질문은 서면질의로 대체됐습니다.

악수를 하고 회의장을 나서는 중소기업인들의 어깨가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