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순 씨가 7년 동안 한땀 한땀 수를 놓아 만든 여덟 폭짜리 병풍 ‘일월곤륜도’를 남편인 소설가 이문열 씨와 함께 둘러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시간 날 때 수를 놓았을 뿐인 걸요.”(박필순 씨)
“평생 남편 그늘에 있다가 이제야 제 얼굴 내보이는 겁니다.”(이문열 씨)
소설가 이문열(李文烈·58) 씨의 부인 박필순(朴畢順·57) 씨의 자수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19일 개막됐다. 활옷과 화관, 노리개, 이층장, 병풍 등 박 씨가 20여 년간 수놓아 온 작품 50여 점이 선보인다. ‘유명 소설가의 뒷바라지를 해 온 아내’로만 알려졌던 박 씨는 “늘 집안에서 수판을 펴 놓고 있었다”(이 씨)고 한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박 씨는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생활자수일 뿐”이라며 부끄러워했다. 버클리대 한국학과의 초청으로 미국 체류 중 일시 귀국해 함께 손님을 맞던 이 씨도 “촌사람들은 다 할 줄 알지, 뭘”이라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틈틈이 수를 놓던 박 씨는 딸이 결혼할 때 혼례복과 혼수함 같은 것을 장만해 주고 싶은 욕심에서 1984년부터 자수 전문가인 고행자 씨에게 자수를 배웠다. ‘수를 놓다가 남편이 국수 말아 달라고 하면 말아 주고 와서 또 수를 놓을 만큼’ 푹 빠졌다고 한다.
전시작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7년 여간 수를 놓았다는 여덟 폭짜리 병풍 ‘일월곤륜도’다. 이 씨는 “이 사람이 이 ‘대작’을 만드는 동안 나도 ‘대작’을 쓰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면서 웃었다.
박 씨는 빼어난 자수 솜씨로 지인들에게서 종종 전시회 권유를 받았지만 고사해 왔었다. 올해로 결혼한 지 33년이 된다는 부부. 남편 이 씨가 정치적인 문제에 얽혔을 때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는 박 씨는 “남편을 내조하는 일이 힘들기는커녕 즐거웠다”고 했고, 이 씨는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오늘만큼은 아내가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는 25일까지 계속된다. 02-736-102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