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적은 사악한 사람이 아니다. 어리석고 무관심한 사람도, 시스템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착하고 영리하며 활기찬 사람일 수 있다. 지도자 위치에 있으면서 서번트이기를 포기할 때, 그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적이 된다. 지도자의 능력을 지녔음에도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 곧 서번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본문 중에서》
지금까지 제시된 21세기 리더십 패러다임 중 현재 국내외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그런데 이는 최근에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이미 30여 년 전, 미국 최대의 전화회사 AT&T에서 경영 관련 교육과 연구를 담당했던 로버트 그린리프 부회장이 처음 제시한 것이다. 그린리프는 1977년에 처음 출간된 ‘서번트 리더십 원전’에서 서번트 리더십의 기본 개념과 철학, 그리고 기업 교육기관 종교기관 관료사회에서의 서번트 리더십 사례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서번트 리더십이 타인을 위한 봉사에 초점을 두고 종업원, 고객, 조직을 우선으로 여기며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이라고 했다. 즉 서번트 리더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지도자다.
그린리프는 서번트 리더십의 기본 아이디어를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 ‘동방순례’에서 얻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순례단 중 허드렛일을 하는 레오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레오는 특이한 존재였다. 여행 중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던 레오가 사라지기 전까지 모든 일은 잘 진행되었지만 어느 순간 레오가 사라지자 일행은 큰 혼돈에 빠져 결국 여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충직한 심부름꾼이었던 레오 없이는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레오가 없어진 뒤에야 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행 중 한 명이 몇 년을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레오를 만나고, 그저 심부름꾼으로 알았던 레오가 교단의 책임자인 동시에 정신적 지도자이며 훌륭한 리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오는 서번트 리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린리프가 제시한 서번트 리더십은 이후 피터 드러커, 스티븐 코비, 피터 센게, 워런 베니스 등과 같은 세계적인 리더십 대가의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왜 우리에게 서번트 리더십이 필요한가? 드러커는 그의 저서 ‘미래경영’에서 현재와 같은 지식경제시대에는 기업을 비롯한 여러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의 구분이 없어지며, 지시와 감독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1세기에는 리더가 부하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조직원을 이끄는 기존의 리더십 패러다임 대신 리더가 부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부하들과 함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서번트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3M 인텔 HP 월마트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이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서번트 리더십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각 부문에서 서번트 리더십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아직 미흡하다. ‘신뢰의 위기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리더에게 서번트 리더십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덕이라고 하겠다.
차동옥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