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을 잃고 / 나는 줄넘기를 했다. / 내 영혼의 최저 고도에서 / 넘실거리는 음악, /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정오의 희망곡’에서)
이장욱(38) 씨는 시인이고 소설가이며 평론가다. 등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씨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김민정 황병승 씨 등 젊은 시인들의 실험시가 시단의 주요 경향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보다 앞서 쓰인 이 씨의 시도 주목받게 됐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은 그런 실험 정신으로 가득하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언어인데 한 편의 시로 엮이니 낯설게 보이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오늘은 인형처럼 걸어다녔다… 나는 어떤 편향도 없다 / 무슨 말인가 흘러나오려는 순간에 / 조용히 멈출 수 있다.’(‘가을에 만나요’에서) 인형처럼 생각도, 말도 없이 걷던 화자는 시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감정을 갖는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다. ‘드디어 당신의 미소를 느끼며 / 나는 전진하였다 / 당신을 향해 / 한 발 한 발.’
이런 독특한 작품들은 시에서 메시지를 찾는 데 익숙해진 독자에게는 당혹스러운 경험일지도 모른다. 이 씨도 “내 시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면서 “시 너머에 다른 의미가 있으리라는 편견을 갖지 말고, 보이는 그대로 읽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한다. 시에 위대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보이는 그대로 읽으면서 언어미를 향유해 달라는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