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성은 9·11테러 현장의 소방대원들과 같은 영웅이며 직업상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용감하고 정당하게 해낸 인물들이다.”
2002년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세 명의 여성을 선정했다.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콜린 롤리, 전 월드컴 감사 신시아 쿠퍼, 전 엔론 부사장 셰런 왓킨스.
모두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비리나 회계 부정 등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들이다.
세 명은 유명 인사가 됐지만 이는 서양에서도 특별한 사례다.
집단적 가치보다 개인의 자유와 용기를 더 높이 쳐 주는 미국에서도 내부 고발자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과 헤어지는 등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현대차 비자금 수사도 내부 제보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기업의 내밀한 금고까지 알려 준 제보자의 정체를 놓고 현대차와 계열사의 전현직 고위 임원과 사장급 인사가 거론된다.
하지만 영웅으로 대접받은 세 여성과 달리 현대차 제보자에 대해서는 “역시 가장 무서운 건 내부의 적”이라든지 “꺼진 불(퇴직 임원)도 다시 보자”는 반응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반응에는 두 가지 논리가 숨어 있다.
우선 내부 고발을 양심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개인적 불만에 의한 보복으로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발된 회사가 집안단속을 잘 못해 ‘재수 없게’ 걸렸다는 인식이다.
1990년 감사원 비리를 폭로한 이문옥 전 감사관은 당시 여론의 지지를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내부 고발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실제로 많은 내부 고발이 기업 내 파벌이나 불만 세력에 의해 이뤄진 것도 이런 인식에 한몫했다.
내부 고발에 관한 한 사회적 인식이나 고발자의 동기가 아직 후진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 및 보상금 제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정비해 왔다.
특히 비리로 인한 국고 손실이 재정 지출의 약 10%에 해당한다는 추산이 나오면서 정부 관련 부패나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내부 고발을 장려해 왔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업의 윤리경영 시스템도 내부 고발을 제도화하고 있다.
기업 내부에 일상적인 업무체계와 다른 직통 제보전화(Help Line)를 두고 언제든 비리를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처가 곪아 터지기 전에 미리 도려내자는 취지다.
심지어 내부 고발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는 법률회사 등이 운영하는 수백 개의 웹사이트가 있어서 내부 고발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안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상황을 선진적이라고 할지, 삭막하다고 할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누구나 휴대전화에 카메라를 한 대씩 갖고 다닌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손쉽게 방대한 자료를 밖으로 내보낼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단번에 전 세계로 퍼뜨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내부 고발은 고발하는 개인이나 기업, 양쪽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내부 고발이 필요 없도록 투명한 회사, 서로 신뢰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