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가늘지만 길게’도 나쁘지 않은 시절이다.
야구계에서도 예전에는 서른 살이면 ‘노장’ 소리를 듣고 은퇴 준비를 했다. 요즘은 마흔 살을 먹어도 ‘노장’ 대신 ‘베테랑’이란 표현을 선호한다. 그만큼 세월의 흐름을 비켜 가는 선수가 많아진 것이다.
지난주 메이저리그에서는 최고령 선수 훌리오 프랑코(48·뉴욕 메츠)가 새삼 화제가 됐다. 2000년 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던 프랑코는 이른바 ‘58년 개띠’로 김경문 두산 감독, 조범현 SK 감독과 동기급이다.
프랑코는 21일 샌디에이고전에서는 메이저리그 최고령 홈런을, 27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는 2번째 고령 기록 도루를 성공시켰다. 시즌 성적도 타율 0.333에 1홈런 4타점으로 녹록지 않다.
그는 자신의 장수 비결을 기도하기, 잘 먹기, 잘 쉬기, 열심히 훈련하기 등 4가지로 꼽는다.
그러나 진정한 비결은 ‘변신’이 아닐까 싶다. 그는 텍사스 시절이던 1991년 아메리칸리그 타격왕(0.341)을 지낸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그가 여전히 ‘스타’이기를 고집했더라면 오늘의 프랑코는 없었을 것이다. 1992년 무릎을 다친 그는 ‘짧고 굵게’ 대신 ‘가늘지만 길게’를 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자리가 없을 때 그는 멕시코 일본 한국을 떠돌았다. 다시 돌아온 메이저리그에서도 ‘왕년의 강타자’ 대신 대타 전문 요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구대성(37·한화)과 양준혁(37·삼성)도 그렇다. 강속구 투수였던 구대성은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특화해 6세이브를 거두고 있고, ‘거포’였던 양준혁은 중거리포로 변신해 타격 2위(0.328)를 마크하고 있다.
작년 한 외신은 프랑코에 대해 “좋은 와인이 익어 가듯 나이를 먹는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많은 선수가 와인처럼 익어 갔으면 좋겠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