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대신 가위가 달린 ‘가위손’을 기억하시는지. 밤하늘에 얼음을 눈송이 처럼 날리며 가윗날로 얼음 조각을 만들던 그 모습을….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1990년 작·원제 ‘가위손 에드워드’·Edward Scissorhands)을 이번엔 무대에서 만난다. 남자 백조를 등장시킨 ‘백조의 호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의 안무가 매튜 본(46·사진)이 영화 ‘가위손’을 무대로 옮겨 경쾌한 ‘쇼’로 만든 것. 7월 내한 공연까지는 두 달이나 남았지만, 벌써 티켓의 40%가 팔려 나갔다. 지난해 전석 매진으로 막을 내린 ‘백조의 호수’보다도 빠른 속도. 현재 영국 주요 도시를 순회공연 중인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왜 ‘가위손’인가.
“영화의 음악이 너무나 좋았고, 눈이나 얼음 조각 등 무대화하기 좋은 이미지도 풍성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끌렸던 것은 보편성 있는 스토리였다. ‘가위손’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에게 어떻게 상처를 입히는지를 다룬 작품이다. 에드워드의 ‘가위손’은 ‘다름’의 상징이다. 누군가에게는 신체적 장애일 수도, 혹은 피부 색깔일 수도 있는 거다. 이런 주제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 어느 사회에서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영화를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과 힘들었던 것은….
“에드워드가 ‘가위손’으로 정원수를 다듬어 만든 ‘토피어리(topiary·장식 정원)’들이 춤추는 장면이다. 영화 속 토피어리들은 멋졌지만, 무대에서는 심심하고 정적으로 보일 것 같아 발레 동작으로 춤추도록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에드워드의 ‘가위손’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거였다.”
무대의 에드워드는 조니 뎁이 연기했던 영화 속 에드워드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삐죽삐죽한 검은 머리, 음영이 짙은 눈, 때로는 귀엽게도 보이는 어설픈 걸음걸이, 손가락 대신 달린 가윗날…. 그는 “‘가위장갑’을 낀 에드워드의 손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안무를 만들어야 했다”고 밝혔다. ‘가위손’을 표현하기 위해 에드워드 역의 무용수는 가위가 치렁치렁 달린 장갑을 양손에 낀다. 양손에 매달린 ‘가위장갑’의 무게는 합해서 무려 1.3kg.
많은 이가 기억하는 영화 ‘가위손’의 유명한 ‘얼음 조각’ 장면이 매튜 본의 ‘가위손’에도 그대로 나온다. 사진 제공 뉴애드벤처스
―원작을 뒤집거나 비틀었던 당신의 이전 작품에 비해 이번엔 원작에 ‘너무’ 충실한 것 아닌가.
“‘가위손’은 원작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만든 부분을 보고도 원작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원작을 그대로 가져다 표현한 부분은 얼음 조각 장면뿐이다. 프롤로그나 결말도 다르지 않은가.”
―영화나 클래식 작품을 원작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 선택 기준은….
“음악이다. 대사 없이 춤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내 작품에서는 음악이 곧 대본이 된다. 좋은 음악은 내겐 곧 좋은 대본이다.”
―당신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렇다. ‘가위손’도 아웃사이더다. 가윗날 때문에 누구를 껴안을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날카로운 날로 상처를 입힐까 두려워해야 하는…. 내가 아웃사이더 이야기를 즐겨 다루는 건 어쩌면 내게도 그런 면이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는 아주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학교는 내겐 그리 쉬운 곳이 아니었다. 어느 사회든 무용을 좋아하는 남자 아이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다.”
그는 “투병 중이던 엄마가 끝내 이 작품을 보지 못한 채 마지막 리허설 중 돌아가셨다”며 “이 작품을 어머니에게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열광적인’ 한국 관객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했다.
“나와 우리 팀은 한국 관객이 정말 좋다. 조용한 일본 객석과는 정말 딴판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서울에서 공연하고 싶다, 불러만 주신다면.”(웃음)
LG아트센터 7월 19∼30일. 02-2005-011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매튜 본의 가위손 어떤 작품
영국 뉴캐슬 최대 규모 공연장인 ‘시어터 로열’. 매튜 본의 최신작 ‘가위손’의 공연 첫날이었던 지난달 19일, 1300석의 이 극장에서 빈 좌석은 한 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매튜 본의 최신작 ‘가위손’은 이전 작품에서 보여 준 대담한 도발성이나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은 없지만 대중성과 재미는 더 뛰어나다.
볼거리가 많아 발레나 무용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원작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쉽게 풀었다.
영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무대,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세트, 마임이 섞인 무용수의 코믹한 연기와 드라마는 비록 대사와 노래는 없지만 왜 그의 작품이 ‘발레’나 ‘춤’ 대신 종종 ‘댄스 뮤지컬’로 불리는지를 이해하게 해 준다.
1, 2막 총 17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가위손’은 원작 영화보다 더 가볍고, 밝고, 경쾌하다. ‘가위손’ 에드워드가 콧수염을 붙인 채 ‘살롱 에드와르도’의 주인이 되어 마을 여자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얼음 조각’ 장면은 원작 영화를 너무 닮은 탓에 오히려 덜 인상적이지만, 군무를 추는 토피어리 등 매튜 본이 무대에 창조해 낸 대목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절로 나온다. 에드워드의 탄생 배경을 담은 프롤로그 부분은 영화에 없는 덤. 하이라이트인 엔딩도 살짝 손질해 따뜻하면서도 슬픈 여운을 남긴다.
뉴캐슬=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