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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아르스 노바’와 ‘하이 서울’

입력 | 2006-05-04 03:05:00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다만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 음악 비평가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좋은 오케스트라의 첫째 조건은 좋은 지휘자를 만나야 된다는 뜻이다.

서울 시립교향악단(시향)이 놀라울 만큼 좋아졌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상임 지휘자로 영입하면서부터다. 우리는 8년 전 모처럼 정명훈을 음악감독으로 초빙했던 KBS 교향악단이 설득력 없는 이유로 불과 4개월 만에 그를 사임시켜 버린 일을 기억하고 있다. 고국과의 인연이 불우했던 정명훈에게 다시 음악감독의 지휘봉을 맡긴 것은 서울시의 현명한 결정이요, 시향의 행운이다.

서울 시향의 음향만이 아니라 그 기획 또한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지난주에 첫선을 보인 제1회 ‘아르스 노바(ars nova·새로운 예술)’ 음악회. 정명훈 못지않게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진은숙을 시향의 상임 작곡가로 초빙해 오면서 꾸민 프로젝트다. 앞으로 3년간 현대음악만을 위한 ‘콘서트 시리즈’를 열어 보겠다는 것이다.

현대음악의 연주회장에는 유럽 미국에서도 청중이 많지 않다. 시장 원리에 맡긴다면 그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기획이다. 사람들의 귀란 본시 보수적이요, 청각적 관성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늘 듣던 음악에만 끌리고 여간해서 새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베토벤이나 바그너도 생존 시에는 다 ‘현대’음악가였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현대의 작곡가가 배출되지 않는 곳에 음악의 발전은 없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국가나 대기업이 나서 수지맞지 않는 현대음악을 지원하고 있다.

카라얀 전성기의 베를린 필하모니에서도 정기공연 시리즈 A와 B 외에 제3의 시리즈로 ‘20세기 음악’만을 해마다 한 시즌 내내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필하모니가 연주를 해도 20세기 현대음악의 청중은 많지 않아서 객석이 민망할 정도로 비곤 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진은숙이 기획한 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의 첫 연주회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거의 메울 정도의 성황으로 출발이 성공적이었다. 몇 가지 긍정적 요인이 작용한 듯하다. 정명훈과 진은숙의 명성, 연주에 앞서 30분에 걸친 진은숙의 프로그램 해설, 그리고 그녀에게 세계 최고의 음악상인 그라베마이어 상을 안겨 준 ‘바이올린 협주곡’을 가운데 두고 클로드 드뷔시, 안톤 베베른, 로베르토 시에라 등 지난 100년의 현대음악 중에서 그래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건한’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편성한 세심한 배려 등등.

윤이상, 강석희, 진은숙으로 이어지는 세계에 알려진 한국 현대음악의 계보를 보면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된 면이 있는 듯싶다. 셋이 다 자기 작품의 뛰어난 해설가요 능변가라는 점, 셋이 다 기획과 조직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점 등이다. 윤이상은 사후에 그 이름만으로 통영예술제를 조직하고 있고, 강석희는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에 앞서 과거 20년 동안 혼자서 내외의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판 무지크(汎음악)’ 페스티벌을 조직하고 운영해 왔다.

진은숙이 아르스 노바를 정명훈의 계약 임기에 맞춰 앞으로 3년 지속하겠다는 것은 아쉽다. 일본의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武滿徹)는 도쿄를 세계 현대음악의 한 메카로 만든 페스티벌 ‘뮤직 투데이’를 한 재벌의 지원을 얻어 20년을 끌고 갔다. 그에 비하면 3년은 너무 짧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처럼 다케미쓰 한 사람이 아니라 윤, 강, 진 등 수많은 세계적 작곡가를 배출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본다면….

그건 어떻든, 보수적인 시립교향악단이 난삽한 현대음악을 잘도 소화하고 연주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경이이다. 나는 문득 1960년대 중반에 당시 서울 시향의 상임지휘자 김만복과 함께 윤이상을 방문한 생각이 난다. 서울에서도 윤이상의 작품을 공연했으면 싶다는 내객의 말에 주인이 자작곡의 악보를 보이자 김만복은 이건 어려워 연주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든 일이 있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없지 않다.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 나쁜 나라도 없다. 다만 나쁜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

최정호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