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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세상을 변화시킨 100인’ 김 용 하버드 의대 교수

입력 | 2006-05-05 03:00:00

김용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아픈 환자가 있는 곳이면 지구 어디든 달려가 치료하는 것이 의사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보람”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보스턴=공종식 특파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얼마 전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2006년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인물들이다. 한국인으로는 가수 비, 프로골퍼 미셸 위와 함께 김용(金墉·미국명 짐 용 김·46)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뽑혔다. 타임은 김 교수를 선정한 이유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과 내성결핵 퇴치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점을 꼽았다. 3일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많은 사람이 결핵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내성결핵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제약회사들이 신약 개발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요.”

―저개발국가의 의료 지원을 위해 설립된 ‘파트너인헬스(PIH)’ 대표를 지내면서 페루, 아이티 등지에서 결핵 퇴치에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으로 압니다만….

“가난한 나라에서 내성결핵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1인당 2만 달러(약 1950만 원)가 드는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PIH가 내성결핵 치료에 나서겠다고 하자 많은 이가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말렸어요. 하지만 내성결핵은 방치하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전투’를 시작했지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선 치료제를 복제약으로 대체해 약값을 90% 이상 줄였다. 치료를 담당할 의료 인력도 훈련시켰다. 완치율이 80%를 넘어서자 이제는 30여 개국에서 김 교수가 사용했던 치료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에이즈 담당 국장을 했는데 WH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그곳엔 한국 식품점이 없어서 집에서 김치를 직접 담가야 하는 게 불편했어요.(웃음) ‘3×5’ 정책을 추진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05년까지 300만 명이 에이즈 치료를 받도록 하자는 방안이지요.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치료받은 환자가 130만 명에 그쳤지만 에이즈 치료에 획기적인 계기가 됐어요.”

―한국이 저개발국가의 의료 지원에 기여할 부분이 있나요.

“그 질문을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웃음)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영어로 인터뷰하던 그는 이 대목에서 한국말로 했다). 너무 인색해요. 예를 들어 에이즈퇴치 글로벌펀드에 경제규모가 훨씬 작은 태국보다도 적은 돈을 냈어요. 이 사무총장이 있는 WHO에서도 한국 분담금은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국제무대에서 ‘메이저 플레이어’가 되려면 이래서는 안돼요. 한국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많이 반성해야 합니다. 한국의 젊은 의사들도 이런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요.”

―미국의 명문대 의대를 나왔으니 좀 더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어머니 영향이 컸어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 철학을 전공한 어머니는 퇴계를 공부한 분이었지요. 항상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한국에 계시는 외할아버지도 제게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98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할 때만 해도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했다는 그는 뒤늦게 한국어 공부를 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이제는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도 눈을 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한 달에 몇 주는 페루 등 오지에 머문다.

‘환자들을 자주 접촉하는데 혹시 감염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의사가 될 때 아픈 환자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달려가서 치료하겠다고 선서했어요. 그곳이 보스턴이든, 페루든 환자 치료는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지요.”


보스턴=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