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서 개성까지는 130km쯤 된다. 휴전선이 없다면 승용차로 1시간 반 거리다. 결코 멀다고 할 수 없는 이 두 도시에 21세기 한국의 운명이 걸려 있음이 흥미롭다.
평택은 한미 관계의 가늠자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차질 없이 이뤄져야 한미동맹의 유지, 발전이 가능하다. 실패하면 전혀 새로운 안보환경 속에서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개성엔 남북 관계의 성패가 달려 있다. 공단 개발이 순조롭지 못하면 상호 의존의 중심축(軸)이 무너지면서 남북이 긴장과 대결로 치달을 수도 있다. 두 곳 모두 성공해야 한다.
평택이 ‘동맹’의 가치라면 개성은 ‘민족’의 가치를 상징한다. 양자의 이성적 결합을 통해서만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우리에겐 평택도 필요하고 개성도 필요하다. 좌우(左右)를 떠나 누구도 이를 부인하기 어렵다. “미군기지 이전 반대” “미군 철수”를 외치며 평택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했다. ‘평택’이 있음으로 해서 ‘개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들은 평택 미군기지로 인해 우리가 원하지 않은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평택이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전략의 발진기지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첨단 군(軍) 시대에 미군기지가 평택에 있어야만 발진기지가 되고, 다른 지역에 있으면 발진기지가 안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동북아시아에 미중 양극화 시대가 올 가능성이 크다면 한미동맹의 새 틀을 짜 놓아야 달라진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미일동맹 강화 방안이 1일 발표됐을 때 다수 국민은 한미동맹의 심화 외엔 대응 수단이 없는 현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죽봉을 휘두르며 ‘평택 사수(死守)’를 외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슨 천상(天上)의 방책이라도 있느냐고. ‘진보’를 자처하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엔 그렇게 민감해 하던 사람들이 미일동맹 강화 앞에선 침묵하고 있다.
다시 개성으로 가자.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이자 북에 시장경제의 바람을 불어넣는 전진기지다. 북의 경제 회생에 도움을 줌으로써 미래의 통일비용을 줄이고, 북한을 경제적으로 예속화하려는 중국의 기도에 제동을 걸어야 할 곳이다. 후자가 특히 중요하다.
이대로 가면 북한은 중국의 동북 제4성(省)이 되고 말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의 성공을 통해 ‘협력하고 개방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믿음을 줌으로써 북이 중국에 기대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미국 예속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북한의 중국 예속화에 대해선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어떤 경우에도 개성과 평택은 함께 가야 한다. 한쪽이 너무 앞서가거나 뒤져선 안 된다. 이 두 도시는, 분단국이면서 4강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의 처지와 활로(活路)를 상징한다. 계획대로라면 평택엔 2008년까지 용산기지가 옮겨 오고, 개성은 1단계 공단개발 사업이 끝나는 2007년까지 남한의 중소기업 230여 개가 입주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업의 성격상 시작과 끝이 다 같을 수야 없겠지만 가능하면 보조를 맞춰야 한다. 물리적으로 어렵다면 어느 한쪽이 앞서간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도, 치밀함도 없으니까 미 국무부로부터 “세계는 개성공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하며, 미국은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한다”는 무례에 가까운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 차례 모욕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개성공단의 성패는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한국산으로 인정받느냐에 달렸다. 인정받지 못하면 입주할 한국 기업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미국은 이미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앞으로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려는가.
이 격변기에 ‘평택’과 ‘개성’이라는 두 창(窓)을 통해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온도를 파악하고 속도를 가늠할 수 있음은 다행이다. 위로는 정책결정자들부터 아래로는 보통사람에 이르기까지 선입견을 갖지 말고 매일 체크했으면 한다.
평택을 보면서 개성을 생각하고, 개성을 보면서 평택을 생각하는 당신의 안목(眼目) 어딘가에 아마 상생(相生)과 윈윈의 길이 있을 것이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