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당신 덕분에 살았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지난해 7월 신장을 이식 받은 하모(51) 씨는 자신에게 새 생명을 주고자 남에게 신장을 기증한 부인 박모(49) 씨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자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아내의 두 손을 꼭 붙잡고 기도했다. 박 씨는 자신의 신장을 남편에게 주려고 했다. 하지만 조직검사 결과 남편이 자신의 신장을 이식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신장을 기증 받는 조건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는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교환이식기증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랫동안 사구체신염을 앓던 하 씨는 2004년 말 만성신부전증으로 병세가 악화됐다. 하 씨는 남들과 달리 신장 투석을 할 때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그는 1년여의 투석 기간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들(22)이 아버지에게 신장을 떼어 주겠다고 나섰다. 박 씨는 “앞길이 창창한 네게 그런 짐을 지울 수 없다”고 아들을 설득했다. 박 씨는 자신의 신장을 주기로 했다. 7개월을 기다린 끝에 자신과 조직이 맞는 이에게 신장을 줄 수 있었다.
박 씨는 “수술 전 몸의 일부를 떼어 낸다는 게 두려웠다”면서 “하지만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던 남편의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직접 기증이 가능한 가족이 기증을 거부해 교환 이식에 나선 사람도 있다.
최모(38) 씨는 올해 2월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에서 남편의 신장 이식을 조건으로 교환이식기증 수술을 받았다. 그는 검사 결과 남편과 조직이 일치해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던 시누이가 두려움 때문에 수술 직전에 마음을 바꾸자 교환이식기증을 선택했다.
이처럼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주부가 가족을 위한 장기기증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1991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5년 동안 운동본부에 신장을 기증한 800명(순수기증 534명, 교환이식기증 266명)을 분석한 결과 교환이식기증 프로그램 참여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74%로 남성(26%)의 약 3배였다.
기증자를 직업별로 분류하면 교환이식기증자 가운데 주부가 42.9%로 가장 비율이 높았다. 부인이 남편을 위해 기증(50.8%)한 경우가 남편이 부인을 위해 기증(22.2%)한 경우보다 많았다.
이에 대해 최승주(崔承柱·여)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사무국장은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한국 여성 특유의 희생정신이 장기이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덕종(韓德鍾)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주임교수는 “가족보다 사회생활을 중시하는 한국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며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주부나 어머니가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연령별로는 30, 40대가 순수기증(65.9%)과 교환이식기증(77.4%)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전체 신장 기증자 가운데 기혼자의 비율은 85.9%였다.
20대의 장기기증 비율은 순수기증의 11.4%, 교환이식기증의 7.1%에 그쳤다.
20대는 순간적 충동이나 열정으로 장기기증을 등록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기증을 포기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명희(金明姬) 국민건강보험공단 가입자보호실 상근이사는 “한국 사회는 장기를 기증한 사람도 장애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결혼하지 않은 20대는 장기기증을 결혼의 장애 요인으로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이식 대기자는 느는데 기증 뇌사자는 적고▼
국립장기이식센터에 등록한 장기이식 대기자는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쉽게 장기 기증을 받을 수 있는 뇌사자의 현황이 의사와 환자 가족의 무관심으로 이식센터에 잘 통보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장기이식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장기이식 대기자는 2004년 1만3100명에서 올해 4월 현재 1만5647명으로 늘었다. 내장 기관과 골수, 각막 등이 장기이식 대상이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등은 순수한 기증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가족 사이의 이식을 제외하면 남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장기이식 대기자에게 뇌사자의 장기 기증은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의료계는 사망자의 1% 정도를 뇌사자로 추정한다. 24만5771명이 숨진 2004년의 경우 뇌사자는 2400여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해에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86명에 불과했다.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평균 4개의 장기를 제공했다. 뇌사자 2400여 명이 1만 명에 가까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은 “장기 기증을 절대 거부한다”는 의사 표시가 없다면 뇌사자가 장기 기증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본다. 또 미국, 영국 등은 의사가 뇌사 판정 시 가족에게 장기 기증 의사를 묻도록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