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6명이 동남아의 한 국가를 거쳐 5일 밤 비행기 편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고 워싱턴 외교소식통이 6일 밝혔다. 북한인권법 통과를 주도한 샘 브라운백 미 상원의원도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들 6명의 미국 입국은 2004년 10월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난민지위가 부여된 첫 사례다. 이들은 북한 고위인사 출신도 아니고, 대량살상무기(WMD) 및 위조지폐·마약거래에 관한 비밀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보통 난민'으로 알려졌다.
브라운백 의원은 "북한인권법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정부관계자를 동남아 국가로 직접 보내 이들의 탈북 후 행적을 확인했고, 미국 체류가 가능한 지위를 사전에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6명 가운데 여성 4명은 인신매매, 납치, 투옥 등 탈북 이후 혹독한 인권침해를 견뎌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북한 인권운동가는 "미국의 정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을 겪은 탈북자를 우선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미국행을 지원해 온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전화인터뷰에서 "제3국에서 미국 대사관의 조사를 받은 탈북자가 더 있으며, 미국에 추가로 입국할 탈북자가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고등난민판무관도 이번에 입국한 탈북자들을 '1차 그룹'이라고 말했다.
'보통 난민'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한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슈화해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대북금융제재를 통한 '돈줄 죄기'와 함께 김정일(金正日)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강도를 높여나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 대신 인권문제'로 대북정책의 방향을 바꿔가고 있는 징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당국자는 최근 "미국 정부가 협상을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기대를 버린 것 같다"고 조심스런 진단을 내놓은 적도 있다.
미국의 명백한 정책선회로 중국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탈북여성 강제북송 사건을 공개 거론한 것은 대중 압박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엔 10만 명 이상의 탈북자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이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과거보다 한층 높아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향후 탈북자의 미국행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제3국 주재 미국 대사관에 탈북자들이 몰리겠지만, 모두가 미국의 난민심사 기준을 통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