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모스크바 시내는 온통 러시아 국기인 삼색기와 옛 소련군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로 뒤덮였다. 9일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 붉은 광장도 기념 퍼레이드 준비로 분주했다. 하지만 정작 시내는 차도 사람도 별로 없이 한산했다.
대부분의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시민)들은 교외의 다차(별장)나 가까운 여행지로 떠났다. 정부가 일요일인 7일과 9일 사이에 낀 8일까지 휴일로 만들어 3일 연휴가 됐기 때문이다. 대신 토요일이라 원래는 휴일인 6일이 평일이 됐다. 러시아에서는 이렇게 휴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데이’는 반드시 연휴로 만든다.
국경일이 원래 휴일인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칠 경우도 걱정이 없다. 반드시 다음 날 하루를 더 쉬어서 휴일을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휴일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 같다.
러시아 직장인들은 1년에 며칠이나 쉴까? 옛 소련 시절부터 실시된 주5일 근무로 1년에 110일의 주말이 있고 7대 국경일과 5일의 신년 연휴를 더하면 1년에 120일이 훌쩍 넘는다. 거기에 1년에 4주씩인 법정 휴가가 더해진다. 사회주의는 무너졌지만 ‘노동자의 천국’은 계속되는 셈이다.
휴일은 아니지만 1년 내내 각종 기념일이 이어진다. 기념일은 직업별로 세분돼 있다. 국경일인 조국 수호자의 날(2월 23일)이 한국의 국군의 날에 해당되지만 이와 별도로 해병대의 날과 전차병의 날, 공수부대원의 날, 잠수함 승조원의 날 같은 식으로 20여 개의 군종별 기념일이 이어진다. 검찰의 날과 외교관의 날, 대학생의 날 등 직업마다 기념일이 있다 보니 ‘무슨 날’이 아닌 날이 없을 정도다.
그때마다 당사자는 즐겁겠지만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 속에 해당 부처나 기관의 업무는 마비되기 일쑤다.
‘노는 날’이 너무 많다 보니 생산성 저하는 당연한 일. 특히 연휴가 몰린 1월과 5월은 여름휴가 기간이 아닌데도 경제가 마비되다시피 한다. 러시아에 진출하거나 러시아와 거래가 있는 외국 기업들은 속만 태운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