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하겠다는 강금실, 오세훈 후보가 ‘서민 흉내 내기’ 경쟁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어제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란히 나와서는 교통카드 충전해서 쓴다,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안다고 ‘장군 멍군’했다. 며칠 전엔 오 후보가 ‘돈을 떠나 마음이 고달프면 서민’이라고 하자 강 후보 측은 ‘돈 없는 서민 모독’이라며 사과(謝過)를 요구했다. 강 후보가 수억 원의 빚을 졌다면서도 ‘패션 지존’처럼 화려한 것은 ‘서민 숭배’인가. 서민적 삶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들이 ‘내숭’을 너무 떤다. “코미디야, 코미디!”
하기야 이들이 고교 등록금을 못 낸 적이 있다, 라면으로 끼니 때운 적이 있다고 가난을 파는 데는 이유가 있다. 표(票)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단순하다’는 경험이 이들을 움직인다. 지난번 대선이 가장 확실한 추억이다. 노무현 후보는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선점하고 이회창 후보를 ‘귀족 대통령’으로 몰아 재미를 봤다. 유권자들이 감성적으로만 반응한다면 어떤 선거 후보건 ‘서민 팔기 장사’의 유혹을 받아들일 것이다.
현 정권 아래선 부유층과 중산층도 피곤해졌지만 역시 서민층이 가장 고달파졌다. 하위 20% 계층의 지난해 연평균 소득은 1040만 원이었다. 이들이 100만 원이라도 남겨 저축할 수 있었을까. 이 1년간 집권층의 재산 증가액은 노무현 대통령이 9447만 원, 열린우리당 의원은 평균 7300만 원, 대통령수석비서관들도 수천만 원씩이었다. 말이라도 ‘서민 사랑, 양극화 해소’를 되뇌지 않고는 속이 거북할 분들이다.
청와대는 양극화 해결에 돈이 필요하다며 세금 더 거두는 데 여념이 없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서민층 빈곤화를 더 악화 시킨다. 지난달 집권 5년을 넘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경제성적표가 역(逆)의 진실을 말해 준다. 그는 재정 지출을 늘리지 않고 경기(景氣) 회복의 길을 열었다.
일본 정부의 올해 공공사업 예산은 7조2000억 엔으로 전임 모리 요시로 정권이 편성했던 2001년 치보다 2조 엔 이상 적다. 그런데도 만 5년 전 구직자(求職者) 100명에 구인자(求人者) 62명이던 일자리 시장이 올 2월엔 구직자 100명에 구인자 104명으로 역전됐다. 내년 대졸 예정자들은 일찌감치 좋은 직장을 고르기에 바쁘다. 고이즈미 총리는 올가을 퇴임할 예정이지만 정부 조직 축소와 이를 통한 국민부담 경감에 힘을 쏟고 있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너무 높다”고 자주 말해 왔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왜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가 하는 점이다. 기업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책 책임자라면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고 논평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일자리를 더 만들도록 투자촉진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세금 쥐어짜 공공부문을 비대화시키고 복지예산을 늘린다고 실업자와 준(準)실업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간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반(反)서민 상황이 되고 만다.
대통령이건 지방 벼슬이건 ‘나야말로 서민적이다. 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립서비스만 할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를 이해(理解)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원리가 물 흐르듯이 작동하도록 정책을 펴야 서민들에게 패자(敗者) 부활의 기회도 생긴다.
부자들에게서 빼앗아 나눠주는 분배정책이 궁극적인 서민정책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정책은 나라 전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려 결국 서민을 더 힘들게 한다.
역설적이지만 기업을 위한 정책이 결국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 세계의 경험이다. 기업을 도와주고 키워주면 서민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소득이 돌아갔다.
물론 기업이 잘된다고 모든 서민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빌 게이츠처럼 되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기업이 번창하고 공정한 경쟁원리가 작동하는 경제체제가 그렇지 못한 체제보다 더 많은 부(富)와 기회를 낳는 것은 분명하다. 그 안에서 서민들의 기회도 늘어난다.
친(親)기업이 친(親)서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인물이 서울시장이 되고, 대통령도 돼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산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