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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지방선거 D-22…‘과태료 50배’의 위력

입력 | 2006-05-09 03:00:00


전북 전주시의 모 아파트에서 동 대표를 맡고 있는 최모(48·여) 씨는 이달 초 모처럼 만난 친구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헤어졌다. 5·31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친구의 남편이 약속 자리에 같이 나왔던 것.

최 씨는 “본의 아니게 후보자에게 밥을 얻어먹었다가 과태료를 물게 될까 봐 겁이 나서 후다닥 밥값을 내고는 도망치듯 식당을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헌금 파문이 있었지만 일반 유권자에게 돈을 뿌리고 향응을 제공하는 과거 같은 ‘돈 선거’의 조짐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공받은 금품의 50배만큼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잘못 먹었다간 더 토해내야’ 하는 제도 때문이다.

▽50배 과태료의 위력?=이번 선거에서는 잦은 언론 보도 때문인지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잘못 얻어먹으면 망신당하고 큰돈을 물게 돼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돼 있다.

대전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요즘에는 할머니들도 ‘나한테 뭘 주지 마. 50배 물어야 되니까’라고 할 정도”라며 “법 하나는 기막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의 70대 유권자 박모 씨도 “4년 전 조합장 선거 때만 해도 후보 측에서 돈봉투를 들고 찾아왔는데 이제는 (돈을) 달라는 사람도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50배 과태료의 양상은 다양하다. 식사 대접은 기본이고 노래방 비용을 대신 내줘서, 정가 8000원인 시집을 1000∼4000원가량 싸게 구입하거나 개업식에 8000원짜리 화분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가 거금을 물어내야 했다.

전남 나주시 남평읍에서는 올해 설에 시의원 1명에게서 한꺼번에 289명이 1만9000원짜리 술을 1병씩 선물 받았다가 적발돼 총 2억7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8일 현재 전국적으로 41건이 적발돼 6억7651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거꾸로 후보자들은 지지자의 기부행위를 만류하느라 애를 쓰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경남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 측은 지지자들이 가끔 선거사무소 운영비로라도 쓰라며 3만∼5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면 “떡이나 음료로 가져오시라”고 거절하고 있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차용증 같은 증빙자료를 갖춰 개인채무로 하지 않으면 불법정치자금이 돼 당선되더라도 나중에 선관위 실사에 걸리면 당선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의 씀씀이는?=대전의 또 다른 기초단체장 후보는 “정당공천을 받은 후보라면 ‘앞방’과 ‘뒷방’ 비용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경선비용과 이후 본선 비용이 대략 같다는 얘기다. 기초단체장 법정선거비용이 대략 1억5000만∼3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3억∼6억 원이 드는 셈.

돈 문제는 주로 경선 비용에서 발생한다. 경선에 대비해 당원을 모집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남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 측은 “경선 때 돈을 요구하는 브로커들이 적지 않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적발한 금품 살포 사례도 경선 때 당원 동원 과정에서 밥값이나 교통비를 준 게 대부분이다. 조직가동비에다 드러나지 않은 공천헌금까지 따지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의 무소속 시의원 후보는 “경선에 선거자금의 70∼80%를 쏟아 부은 후보들이 공천을 받고 나서는 정작 선거운동에 쓸 돈이 없어 허덕인다”고 전했다.

일단 경선을 통과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 선거비용은 크게 제약을 받고 15% 이상 득표하면 나중에 국고에서 전액 보전을 받을 수 있다.

조영규(趙暎奎) 한나라당 경남 함안군수 후보 측은 3월 19일 예비등록을 한 뒤 8일까지 법정선거비용 1억1300만 원 중 명함, 선거사무소 현판, 현수막 비용 등으로 1700여만 원을 썼다고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조 후보 측은 “선거운동 기간에 접어들면 선거유세차량과 운동원 인건비 등으로 1억 원이 훌쩍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조 후보처럼 일부 후보자는 중앙선관위의 후보자 홈페이지에 매일 선거비용 수입 지출 내용을 올리고 있다. 선관위의 철저한 실사도 뒤따른다.



▼암행 감시단원 2600여명 활동중

“선관위 직원들도 우리얼굴 몰라요”▼

서울에 사는 전업주부 장혜리(가명·46) 씨는 5일 동네의 교회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다녀왔다. 행사 자체보다는 행사장을 찾은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을 상대로 불법 부정선거운동을 벌이는지 감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장 씨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한 이 지역의 ‘비(非)노출’ 선거부정감시단원이다. 장 씨와 같은 비노출 감시단원은 전국에서 26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하지만 선관위가 명단을 별도 관리하고 있어서 현장 단속을 나가는 선관위 직원들조차 누가 감시단원인지 모른다.

올해 1월부터 그가 선관위에 신고한 부정선거 의혹 사건은 15건이나 된다. 현직 지방의원이 마을 어머니회의 친목 모임에서 밥값 20만 원가량을 낸 것을 적발하기도 했다. 장 씨는 선거운동 현장을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면서 아직도 유권자들이 많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보에게 찾아가 행사 협찬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거절하면 ‘옛날에는 선거법 없었나, 건방지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동취재팀

김정훈 차장(팀장) jnghn@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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