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외침과 정부의 엄중한 경고는 한국 사회에선 흔한 일이 돼 버렸다. 대추리 사태도 역시 그랬다. 시위대와 군, 경찰이 잇달아 충돌하고 다수의 부상자와 구속자가 발생했다.
‘대추리 대전(大戰)’의 승자는 누구일까. 철조망이 쳐진 들녘을 바라보는 반대파 주민이 승자일 수는 없다. 다수가 연행되거나 구속된 반미반전(反美反戰)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승자가 아니다. 더구나 이들은 여야가 합의한 국가 정책에 반기를 들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처지다.
철조망으로 주한미군기지 설치 지역을 확보한 정부가 승자인가. 일단 목표를 달성했으니 승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목표는 항상 소프트 랜딩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도 승자가 아니다. 결국 이번 ‘전투’는 누구도 바라지 않은 상흔을 남겼다.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전투에서 승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갈등이란 말 그대로 칡(葛)과 등나무(藤)가 얽혀 있는 형국이어서 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회적 갈등은 보편적 현상이다. 광복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첨예한 갈등에서 자유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물러가고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이후 갈등은 더욱 표출되고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갈등이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갈등은 사회적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가 경직되지 않을수록 갈등은 자주 발생하며, 그 갈등이 강렬하지 않을 때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된다는 갈등기능론이 바로 그것이다. 양성평등 등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도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면서 증진됐다.
갈등의 순기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강도를 조절하고 악화를 막으려는 갈등관리 노력은 필요하다. 갈등관리에 실패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결코 적지 않다. 감사원은 정부가 1986년부터 19년간 8전 9기 끝에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터를 선정하는 데 3485억 원을 허비했다고 최근 지적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입은 유무형의 손실과 그 싸움을 지켜본 국민이 받은 스트레스까지 계산한다면 그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대추리 대전’의 한 당사자인 국방부에 국민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묻고 싶다. 국방부는 주민과 150여 회에 걸쳐 대화를 나누고, 주민 대책위 간부들과 38차례에 걸쳐 협의했다고 말한다. 이번 사태가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고 해결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을 간과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5월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청문회, 공청회, 공람 등 기존 제도로 해결하기 힘든 갈등이 발생하고 있어 새로운 의사결정 방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변화에 따라 갈등해결 방식도 세련미를 갖춰야 한다. 국방부는 이번 사태가 반미반전 단체 회원이 가세해 꼬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구태의연한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는 ‘대추리 대전’을 갈등관리의 교재로 삼아야 한다. 바둑을 복기하듯 한 수 한 수가 사태의 진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해서 백서를 만들면 어떨까. 대추리가 상흔만이 아니라 교훈도 남기길 바란다.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