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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詩語의 슬픈 유혹… 최정례 새 시집 ‘레바논 감정’

입력 | 2006-05-11 03:03:00


‘너와 나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막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오래가지 못하는 슬픔을 위하여/끝까지 쓰러지자/슬픔이 칸나꽃에게로 가/무너지는 걸 바라보자’(‘칼과 칸나꽃’에서)

5년 만에 최정례(51) 시인의 시집 소식이 들렸다. 그는 화려하게 주목받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내공 있는 시를 써온 작가다. 얼핏 이해되지 않는 듯 보이는 시구가 많지만, 짜임새가 견고하다. 익숙한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모국어를 낯설게 재구성하는 시 쓰기 방식은 독자들에게 불편하게 읽힌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은 이상하게 매혹적이다.

‘검은 줄무늬에 갇혀/수박은/속은 타서 붉고 씨는 검고/말은 안 하지요 결국 못하지요/그걸/레바논 감정이라 할까 봐요’(‘레바논 감정’에서). 속 붉은 과일처럼 타는 심정을 햇볕에 타는 듯한 팍팍한 사막의 도시 레바논에 비유하는 과감함은 낯설고 새롭다. 시인은 ‘레바논 감정’이라는 말을 만들어내 옛 사랑의 상처를 표현하는데(‘내가 쓴 편지가 갈가리 찢겨져 답장 대신 돌아왔을 때/꿈이 현실 같아서/그때는 현실이 아니라고 우겼는데/그것도 레바논 감정이라고 할까요?’) 독자들은 시를 읽은 뒤 ‘레바논’과 ‘감정’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단어의 조합이 의외로 오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흥남 부두는 노래 속에서 내린다 굳쎄여라 금순아 속에서. 눈보라의 아우성 속에서 엄마아, 꽝 터지는 폭탄 속에서’(‘눈발 휙휙’에서) 같은 시구에 담긴 리듬, 그리고 슬픔과 능청스러움이 어우러진 정조(情調)는 시어를 부리는 최 씨의 감각이 얼마나 빼어난지 보여주는 것이다. ‘밀도 높은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평론가 이남호)이라는 평은 이런 시편들에서 잘 확인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