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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北에 많은 양보” 파문]野 “DJ 이용해 표 모으기”

입력 | 2006-05-11 03:03:00

한나라 “일방적 지원 반대”10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날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양보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남북 정상회담 구걸은 민족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9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한 ‘조건 없는 대북 지원’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지방선거용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10일 “대북 지원과 관련한 ‘중대 제안’은 없다”고 일축했으며 열린우리당은 “정치 공세를 중단하라”고 맞섰다.

▽“대통령이 할 말이냐”=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조건 없는 대북 지원론’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6월 방북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나왔다는 점에서 호남 등 전통적 지지층 결집을 위한 선거용 발언이 아니냐고 반발했다.

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문제를 지방선거용으로 이용하기 위한 의도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방호(李方鎬) 정책위의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하는 식으로 하려는 것은 남북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민족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발언”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또 이 의장은 “‘미국 및 주변 국가들과의 여러 관계 때문에 선뜻 할 수 없는 게 많은데 김 전 대통령이 길을 열어 주면 나도 슬그머니 할 수 있다’는 게 과연 대통령의 발언이냐”며 “노 대통령이 하겠다는 무제한의 물적 지원은 김 전 대통령의 대북 송금 때처럼 보답성 대가성 지원 아니냐”고 물었다.

민주당 이상열(李相烈) 대변인은 “갑자기 김 전 대통령에게 대북특사 역할을 맡아 달라며 부담을 주는 것은 선거 판세가 불리해지자 방북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대북정책 기조 변화 없어”=이종석 장관은 이날 “대통령의 말씀은 현재의 (6자회담 등과 관련한) 지체 상황을 타개하고 필요한 진전을 이뤄 내기 위해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날 통일부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공동번영을 위해 틀을 좀 크게 보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켜 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광주를 방문한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도 “노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힌 대단히 전향적인 언급”이라며 “지방선거용으로 폄훼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朴用鎭) 대변인은 “대북관계를 지방선거에 활용해 보려는 얕은꾀라면 호재가 아니라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북-미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조속한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가 더욱 절실한 때임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2000년 DJ 베를린선언과 비교해보니

공통점 ‘당근’통해 정상회담 희망
차이점 北과 사전조율 흔적 없어

9일 노무현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선언’은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지원’과 ‘원칙 있는 양보’를 주요 내용으로 하지만 초미의 관심사는 이번 선언이 과연 2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2000년 3월 9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의 자유대학에서 했던 연설은 그해 6월에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또 정부의 목표는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이지 북한의 체제를 흔들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천명해 북한을 안심시키고, 남북 당국 간 대화 개최를 위한 특사교환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도 김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를 희망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한편 그 반대급부로 북측에 ‘많은 양보’와 ‘조건 없는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베를린 선언과 유사하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베를린 선언의 경우 그해 2, 3월에 이미 북측과 사전에 물밑접촉을 하던 상황에서 북측의 공개적인 의지 천명 요구에 화답한 측면이 크다.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宋浩景) 당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수차례의 비밀접촉을 거쳐 2000년 4월 총선 직전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북한과 사전에 조율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베를린 선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문서 형태로 발표된 반면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선언은 비공식적인 동포간담회에서 원고 없이 발표됐다.

경남대 김근식(金根植·정치외교학과 ) 교수는 “이번 노 대통령 발언은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앞두고 희망을 피력한 측면이 커 보인다”며 “6년 전처럼 북한과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 이미 시작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