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대기업들도 북한 개성공단에 입주할 수 있게 도와 달라”며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이에 대해 개성공단을 기피하는 상당수 대기업은 정부의 요청을 ‘사실상의 압박’으로 받아들이며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 K 팀장과 한국토지공사 L 임원은 지난달 초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을 방문해 “대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입주할 수 있도록 전경련이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K 팀장이 ‘시범단지 입주 기업들이 대부분 소규모 가공업체여서 남북 경협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입주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전경련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이 이달 말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열 공동설명회와 별도로 다음 달 초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분양설명회를 하기로 했다.
개성공단은 남측의 기술력과 자본, 북측의 싼 임금을 결합해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2002년부터 추진돼 왔다.
단지 조성을 맡고 있는 토지공사는 1단계 100만 평 규모의 개성공단 부지를 남측 기업들에 분양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25만 평은 6월 말 분양된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개성공단 입주의 현실적 한계 때문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국제협약으로 주요 전략물자는 북한에 반입할 수 없기 때문에 개성공단에는 대기업의 시설 투자 자체가 힘들다”며 “그렇다고 정부의 입장을 무시할 수도 없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의 임원도 “개성공단은 인건비가 낮다는 것 외에는 아직 모든 것이 열악한 상태”라며 “모든 물자를 남쪽에서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물류비 부담이 크고,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수도 없어 대기업이 입주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협조 요청에 심리적 압박을 느낀 몇몇 대기업은 결국 ‘개성행(行)’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주요 경제단체장들이 경영하는 대기업은 진지하게 개성공단 입주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북핵 문제가 언제 핫이슈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북한에 거액의 시설투자를 하는 것은 비(非)상식적인 경영 판단”이라며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이 참여한다면 ‘정치적 고려’ 때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 K 팀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개성공단 분양에 앞서 전경련을 방문해 대기업이 개성공단에 입주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한 홍보와 수요 조사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