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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비]남궁 경/평양의 살구꽃

입력 | 2006-05-12 03:01:00


어디선가 나지막한 소리로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온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여든 살이 넘은 할머니 수녀님들이 나란히 앉아 부르시는 노래였다.

어느 수녀님은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 평양 출신 수녀님의 무덤 앞에서 이런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수녀님, 평양에 다녀오겠습니다. 통일되면 수녀님도 본원이 있던 평양에 묻히세요.”

이번 평양 방문은 북측 조선카톨릭교협회(위원장 장재언 사무엘)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서울 민화위)를 초청해 이루어졌다. 지난 10여 년간 서로 우애와 신뢰를 쌓은 결실이기도 하다. 북측에 국수공장을 세웠고, 서울 민화위는 평양에 어린이영양제 생산공장도 건설했다. 이것이 북측 어린이들이 굶주림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북측은 영양제 재료와 국수제조용 밀가루의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서울 민화위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방북과 상주(常駐) 사제 허용 등의 문제를 제기했으나, 북측은 여전히 난색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공식 방북은 앞으로 천주교 교류가 계속 이어가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우리 일행은 4월 26일 수요일 오전 9시 20분 김포발 비행기로 서해안 바닷길을 통해 1시간을 날아 도착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악수를 나누었던 순안공항을 빠져나와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조용했다. 특히 인상적인 모습은 길거리의 나무들이었다. 언뜻 보면 벚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분홍빛이 나는 살구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인 28일 묘향산을 둘러보았다. 북녘땅을 둘러보면서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늘 추억을 남긴다. 자연과 음식에 대한 기억도 있지만, 그곳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은 인상이 더 크게 자리 잡는다. 1994년 큰물 피해 이후 참 힘들었을 텐데, 잘 견디고 있는 모습이다. 조금은 여유가 풍겨 나온다. 아마도 민족의 화해 가능성일 것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어디선가 다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남궁 경 신부·가톨릭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사목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