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초대석]부부일치운동 ‘ME주말’ 발표부부 한승옥-홍종순 씨

입력 | 2006-05-13 02:59:00

“천주교 부부일치운동인 ‘ME주말’을 지내면 문제 부부는 사이가 좋아지고 잉꼬부부는 더욱 다정해집니다.” ‘ME주말’의 발표부부 한승옥(왼쪽) 홍종순 씨가 10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정답게 손을 잡고 있다. 원대연 기자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 그래서 말과 사고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오랫동안 지구에 살면서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사실을 잊었다. 스테디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한 대목이다.

부부는 싸우면서 성격 차를 탓한다. 한국에서 성격 차는 이혼사유 1위다. 성격이 다른 부부가 다른 말로 싸우니 갈등은 증폭된다.

그러나 한승옥(韓承玉·61·숭실대 국문과 교수) 홍종순(洪鍾順·54) 씨 부부는 “그 다른 점 때문에 서로 이끌렸다는 점을 상기하라”고 말한다. 이들은 천주교 부부일치운동인 ‘ME(Marriage Encounter)주말’의 발표부부다. ME주말에 참가한 다른 부부들은 이들을 ‘지도부부’라고 부른다. 다른 부부들을 지도한다고?

5월 부부의 날(21일)을 앞두고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에서 이들을 만났다.

“부부의 성격 차가 장점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갈등을 넘어 기쁨이 됩니다.”(한 씨)

“우리 부부도 갈등을 겪습니다. 다만 갈등을 푸는 방법을 알고 있지요.”(홍 씨)

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부부를 거창하게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체험을 다른 부부와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ME주말의 발표부부로 살게 된 것은 ME주말을 통해 자신들이 크게 변화됐기 때문이다.

ME주말 참가를 제안한 것은 아내 홍 씨였다. 부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이 부부는 남편 한 씨가 숭실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았다. 아내 홍 씨의 직장이 부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말에 내려온 남편이 생일선물로 귀고리를 선물했는데 귀를 뚫지 않은 사람 것이었어요. 당시 귀를 뚫는 것이 유행이라 귀를 뚫었거든요. 무관심의 증거지요. 제가 꿈꿔 온 결혼생활이 그런 것은 아니었거든요.”

홍 씨는 우연히 가톨릭 주보에 난 ME주말 안내를 읽고 당장 신청했다. 한 씨가 당시 ME주말을 통해 받았던 감동을 전한다.

“그동안 장롱 속에 숨겨진 보석을 비로소 발견했습니다. 필요에 의해 그냥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곁에 진정한 사랑이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ME주말이 끝난 그날 저녁도 잊지 못한다. 이번에는 홍 씨의 경험이다.

“둘이 손잡고 걸어오는데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 사람이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었나 하고 생각했지요.”

이들은 연애시절 감정이 되살아나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편지마다 그리움이 피어올랐고 내용은 신기하게도 점점 같아졌다.

연말 하숙집 밥이 부실했는지 한 씨가 호되게 앓았다. 홍 씨는 “역시 부부는 같이 살아야 한다”며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두 아이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셋째인 막내딸을 낳은 직후 이 부부는 ME주말에서 지도부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보수는 없고 오히려 주말과 상당 기간 저녁시간을 바치면서 차비와 저녁 값을 써야 한다. 저녁시간에 집을 많이 비우다 보니 아이 셋을 잘 보살펴 주지 못했다.

“강요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둔 편입니다.”(홍 씨)

“능력을 발휘하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최선이에요.”(한 씨)

한 씨는 “우리 부부가 사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다른 부부들이 변화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다”며 “싸운 얘기 같은 체험을 있는 그대로 전하자니 부끄럽고 부담도 된다”고 털어놓았다.

홍 씨는 “우리는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뿐 결국 변화하는 것은 부부 자신들”이라며 “그들이 변화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의 발표가 필요한 과정이구나 생각돼 다시 봉사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다른 부부들의 발표를 들으며 지도부부들까지 울 때가 많아요.”(홍 씨)

“발표부부를 하면서 우리 부부의 삶이 고양됐습니다. 그 매력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고 우리가 봉사한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한 씨)

인터뷰를 마치기 전 함께 간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 직원이 이 부부에게 원고 청탁을 했다.

“우리는 곧 여행을 갈 텐데 그렇게 (원고 청탁을) 승낙하면 어떻게 해요. 남편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을 맡아요. 답답해서 속이 타지요.”

“나도 답답하고 속이 타.”

“당신은 속은 안 타요. 맘고생은 하지만….”

“내가 당신 잔소리 참으니까 이제껏 살았지.”

한 씨 부부는 다른 부부에게 들려줄 또 하나의 경험을 쌓고 있었다.

“무뚝뚝한 큰애가 ‘엄마 아빠가 서로 존중해 주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좋았어요.”

“아내가 나를 잡아 주고 빈 곳을 채워 주니까 내 성격과 아내의 성격이 만나 완벽한 원을 만듭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한승옥 홍종순 부부는▼

친지 소개로 만나 1976년 결혼해 부산에서 살았다. 첫딸 보람(29·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과 둘째인 아들 아람(25·군복무)을 낳은 뒤 1982년 남편 한 씨가 숭실대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주말부부로 살았다. 그해 여름방학 때 ‘ME주말’을 지낸 뒤 연말 아내 홍 씨가 직장에 사표를 내고 보금자리를 서울로 옮겼다. 막내딸 예슬(20·숭실대 영문과 3년)을 낳은 뒤 삼칠일 만에 ‘ME주말’의 발표부부가 돼 19년간 봉사하고 있다.

■ 부부일치운동 이란

천주교 부부일치운동인 ME는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가 문제 청소년을 지도하면서 개발했다. 불안정한 부부관계를 개선하면 청소년 문제도 해소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96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8쌍의 가난한 노동자 부부들이 모여 처음으로 ME주말을 가졌다.

1967년 미국 노터데임대 척 갤러거 신부가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금은 96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77년 시작돼 현재까지 2700회에 4만6000쌍이 참여했다.

‘혼인의 다시 만남’이란 뜻을 가진 ME는 부부 간 대화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문제가 있는 부부뿐 아니라 잉꼬부부로 소문난 부부들도 많이 참여한다. 이혼 직전까지 간 부부들이 참여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다.

ME는 한 장소에 25쌍 정도가 모여 2박 3일간 주말을 보낸다. 신부 1명과 이미 ME를 경험한 발표부부 3쌍의 도움으로 진행한다. 이것이 ‘ME주말’이다.

서울에서는 중구 장충동, 용산구 한남동, 도봉구 우이동 등 세 곳의 ‘피정의 집’에서 열린다. ‘ME주말’에는 외출이 허용되지 않으며 잠은 각 쌍에게 배정된 방에서 잔다.

천주교에서 시작됐지만 종교 학력 빈부 차별을 두지 않고 결혼한 지 5년 이상 된 부부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 신자나 불교 신자도 심심치 않게 다녀간다.

참가 부부는 함께 혼인생활을 뒤돌아보며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이후 각 쌍은 배정된 방에 들어가 실제로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참가 부부든 발표부부든 ME주말을 지낸 뒤 프로그램 내용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다음에 찾아오는 부부들이 호기심을 갖고 참가해 프로그램에 열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ME주말 참가 부부들은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무언가 영적인 힘이 부부 사이를 다시 묶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부부들도 많다.

ME주말 참가 부부를 위한 사무실 격인 ME만남의 집(02-511-9901)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