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강판권 지음/360쪽·1만8000원·지호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
차나무는 열매와 꽃이 서로 만난다. 차나무의 열매는 차나무의 꽃, ‘운화(雲華)’가 영롱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익어 간다. 대개 나무는 꽃이 핀 뒤 열매를 맺는 법이니 독특한 습성이다.
10, 11월에야 느지막이 피어나는 꽃은 같은 차나뭇과에 속하는 동백을 빼닮았다. 흰빛을 띤 다섯 장의 꽃잎은 군자의 지조와 여인의 정절을 상징했으니, 뿌리가 곧게 내리는 ‘직근(直根)’의 차나무는 옮겨 심으면 쉬 죽고 만다.
이 다섯 장의 꽃잎은 녹차가 지닌 고(苦) 감(甘) 산(酸) 신(辛) 삽(澁)의 다섯 가지 맛을 드러내는데, 선인들은 이를 인생에 비유해 너무 힘들게도(澁), 너무 티나게도(酸), 너무 복잡하게도(辛), 너무 편하게도(甘), 그리고 너무 어렵게도(苦) 살지 말라고 일러 준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차 한 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다. 아니,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오롯이 담겨 있는 차의 역사, 차의 문화사다. 고대 하은주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수천 년의 중국 역사가 차향을 품고 바람결을 따라 흐른다.
일찍이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읽겠다고 선언해 온 저자. 그가 맨 처음 점지한(?) 나무가 차나무다. 그에게 차나무는 곧 중국인의 삶이자 역사였다.
은나라 때부터 재배되었던 차 문화의 꽃을 피운 것은 수 문제였다. 심한 두통에 시달렸던 황제가 산중의 차나무 잎을 달여 먹고 효험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천하 사람들이 다투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당송대는 바야흐로 차 문화의 전성기다.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라고 할 ‘차경(茶經)’이 나와 다도(茶道)가 성립되었고 중국인들은 차를 즐기다 못해 탐닉했다. 그 사랑이 지나쳐 매점매석이 횡행하기도 했다.
“차 한 잔 하게나!” 조주선사의 저 유명한 화두 ‘끽다거(喫茶去)’가 나온 게 이때다. 차를 마시는 일상의 행위가 곧 도(道)임을, 삼라만상이 스승이며 삶 자체가 공부라는 깨우침이다. 당송대에 차 문화가 얼마나 생활 속 깊이 스며들고 있는지 그 현주소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차선일미(茶禪一味)! 중국인들에게 차는 그런 것이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