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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아, 불쌍한 유부남이여…‘유부남 이야기’

입력 | 2006-05-13 03:00:00


◇유부남 이야기/마르셀로 비르마헤르 지음·김수진 등 옮김/328쪽·9000원·문학동네

“여자들 중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이 처지는 사람과 여전히 봉긋한 사람 두 부류가 있다. 나이가 들며 퍼지는 등 변화를 겪은 둔부가 시간이 흐르면서 무슨 기적이 일어났는지 상당히 농염하고 매력적이고 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리나는 그렇게 변해 있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소화기관을 혹사시키며 짜증스러운’ 저녁 식사를 하던 ‘나’는 화재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출동한다. 그런데 길에서 옛 여자친구 ‘리나’를 발견한 ‘나’는 화재 진압도 잊은 채 차에서 내려버린다.

유부남들이 한 번쯤 마음에 품어봤을 법한, 더욱 매혹적이 된 옛 애인과의 재회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셀로 비르마헤르(40)의 단편집 ‘유부남 이야기’ 중 ‘마차’의 한 대목이다. 비르마헤르는 ‘유부남 이야기’ 시리즈로 ‘우디 앨런과 서머싯 몸을 합쳐 놓았다’는 평을 받은 소설가. 평범한 중년 가장들의 속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으면서, 애잔한 뒷맛을 남겨 놓는 방식이 돋보인다.

소설 속 유부남들은 하나같이 왜소하고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짧은 분량의 단편들에 극적인 구조를 짜 넣고 사실적인 심리 묘사를 하는 작가의 솜씨도 좋다. 몰래 웃고 무릎을 칠 독자들이 꽤나 많을 듯싶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