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8시 인천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4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국음식점 ‘풍미’에 색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대한민국 CEO’라고 쓰인 잠바를 입은 한 중구청장 예비후보가 “잘 지내셨죠”라며 인사를 하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조지미(趙志美·53·여) 씨는 “이렇게 매일 찾아오시지 않아도 되는데…”라며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후보자가 몇 마디 덕담을 건넨 뒤 식당을 나간 뒤에도 조 씨의 얼굴에는 한동안 기분 좋은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에게서 이런 인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화교(華僑)인 조 씨가 올해 처음으로 ‘유권자 대접’을 받는 것은 지난해 8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된 데 따른 것. 법이 바뀌면서 영주체류 자격을 취득한 지 3년이 넘은 19세 이상의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이 주어졌다. 이에 따라 국내에 살고 있는 6000여 명의 화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여태까지는 선거 때 아무도 찾아오지 않다가 선거권이 생기니 후보들이 찾아오는 걸 보면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고 마음이 설렙니다.”
조 씨는 “학교 반장선거 말고 국가에서 치르는 선거는 처음 해 본다”며 “누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지 속으로 재고 있다”고 말했다.
조 씨의 식당이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540여 명의 화교가 살고 있다. 과거 구청장 선거에서 100여 표차로 당락이 갈린 적도 있는 만큼 후보자마다 차이나타운에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들은 “후보마다 2, 3일에 한 번씩은 차이나타운에 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 물품을 판매하는 ‘영황상사’에서는 화교 범수란(64·여) 씨가 여동생과 구의원 후보 명함을 보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범 씨는 “후보들 명함마다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어 신기했다”며 “인상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어 그 사람을 찍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높은 관심을 반영한 듯 인천시선거관리위원회가 3월 모의투표 시연회를 열었을 때 이 지역 화교의 절반에 가까운 200여 명이 참여했다.
인천화교협회 손덕준(孫德俊) 부회장은 “처음 얻은 선거권인 만큼 주민들의 선거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얻은 외국인 영주권자는 전국적으로 6310명으로 추정되며 그중 대부분은 대만 국적의 화교다.
외국인 국적자는 지방선거와 주민투표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는 투표권이 없다.
인천=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