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에 따라 제정된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법치국가라고 한다면 이 시대 대한민국을 법치국가라고 하는 것은 ‘외람된 말씀’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정권 쪽이 초법적 행위를 일삼았지만 군사정권이 물러간 후 지금까지는 또 다른 무법자들이 이 사회를 어지럽히며 나라를 ‘떼치’국가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산업 현장에서,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공권력에 도전하면서 법과 원칙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이 집단은 일반 국민이 갖지 못한 조직력과 주특기인 투쟁 전략으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해 정권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외교 국방 경제 교육 환경 등 온갖 국정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것도 이제는 그들의 버릇이 되어 버렸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이번 평택 시위는 그들의 그런 관행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평택 사태는 ‘미국 제국주의 군대가 어느 날 느닷없이 평택에 쳐들어가 그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평화롭게 농사짓던 사람들이 고향을 지키려고 봉기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의 요구로 한미 양국 정부가 오랜 기간 협상을 벌인 끝에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데 합의하고 분명히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비준까지 받은 사안이다. 이것을 일부 단체가 폭력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 국회의 비준을 받은 후 이들 단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억지와 같다.
그런 초법적 발상도 문제지만 우리가 이번 평택 사태에서 가장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은 ‘자국 군대가 주둔지에서 불법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군사시설이 파괴되고 장병이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술 취한 군인들이 뒷골목에서 민간인에게 폭행당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엄연히 군사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폭력집단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본 것이다. 군대라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아들딸들을 뽑아,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하는 핵심 조직이다. 따라서 군 시설을 들부수고 병사를 두들겨 패는 것은 바로 우리 국민 자체에 적대 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
서해에서는 북한군에게 목숨을 잃고 평택에서는 폭도들에게 부상을 당해야 하니 대한민국 군대는 동네북이란 말인가. 이처럼 군이 안팎의 불순 세력에게 당하고 있는데도 군의 최고 통수권자가 그들을 엄단하지 않고 ‘슬그머니’ 지나가려 한다면 이 나라는 더는 온전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시위대와 공권력) 모두 한 걸음씩 물러나서 냉정을 되찾읍시다”라는 총리의 담화도 그렇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에게 한 걸음 물러나라는 건 무슨 뜻인가. 죽봉에 맞아 진흙탕에 뒹굴고 뼈가 부러진 부상병들에게 냉정을 되찾으라니, 장병들이 흥분했기 때문에 다쳤다는 말인가.
시위 주동자들은 과거 미군 차량에 의해 여학생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열심히 촛불시위를 선동했지만 서해교전에서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해군 영웅들의 추모집회는 침묵으로 외면했던 사람들이다. 북한군의 도발에 관대하고 우리 군을 백안시하는 것까지야 그들의 자유라고 하자. 그러나 이 세력이 대한민국의 소중한 ‘국방 자원’인 국군 병사들에게까지 노골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일이다. 북한엔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고 폭력 시위대에 너그러운 이 정부라도 이번 일까지 유야무야 넘어가선 안 된다. 정부가 그런 식이라면 이제는 군이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나서서 군대를 지켜 줘야 할 판이다.
전문 시위꾼들에게 가정이나 사회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살라고 꾸짖는다 해서 쉽게 개과천선할 리 없다. 시위대 앞줄의 특정 신부와 목사에게 교단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한들 그 고집이 꺾일 것 같지도 않다. 현장에서 폭력시위를 격려하는 여당 국회의원에게 유권자들의 여론을 읽으라는 충고도 마이동풍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기대보다는 절차와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그들의 억지에 이 사회가 얼마나 낭비되고 있으며 그들의 목청이 높아질 때마다 소리 없는 대다수 국민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고 있는지 알려 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깨우쳐 주는 국민의 질타와 책망만이 이런 짓을 끝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