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71·사진) 씨는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는 귀띔을 들은 터다. 그는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설립 60주년을 맞은 고려대 문과대(학장 조광)가 마련한 ‘제1회 금호아시아나 석학 초청 학술 강연’ 연사로 초청을 받아 17일 방한했다. 이날 저녁 본보와의 단독 회견에서 오에 씨는 처음엔 서먹한 말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활달해졌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 온 오에 씨는 “우리의 식민주의와 군국주의로 피해를 보았던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 우리 정부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도 분쟁이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 등 한일 간 갈등의 해법에 대해서는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모두가 ‘아시아의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내 마음의 문제’라고 하더군요. 정말 마음을 생각한다면 그로 인해 상처 받는 한국인의 마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 ‘아시아의 인간’이라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그는 “권력을 지닌 정치가가 이런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우리처럼 권력을 지니지 않은 개인이 생각을 하고 의견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에 씨는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고 소설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드러내 왔다. 최근의 젊은이들은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고 하자, 오에 씨는 인기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씨의 얘기를 꺼냈다.
“무라카미 씨나 요시모토 씨 같은 소설가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다뤄 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러질 않아서 한동안 불만이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무라카미 씨는 그의 방식대로 사회를 그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소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고베 대지진 같은 일본의 상처를 만날 수 있어요. 나는 역사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그려 왔지만 그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나타내지요. 지금은 무라카미 씨를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오에 씨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무라카미 씨의 독자들도 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씨의 독자’란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젊은이들에 대한 믿음을 그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의미 있고 묵직한 소설을 써 온 그에게 요즘 후배 작가들의 소설들이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마치다 고(町田康)라는 작가가 쓴 소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직이 펑크록 가수인데 작품이 독특하더군요. 가사 쓰듯 소설을 썼는데, 기성 소설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해 냈어요. 이제는 이렇게 대중음악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와 섞여서 소설이 나와요. 저는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좋은 문학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말 ‘안녕, 나의 책들이여’를 출간하면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던 오에 씨. 그는 “그때는 그런 심정이었는데 반 년 정도 지나니까 또 다른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며 웃었다.
“실은…처음 말하는 건데, 노인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하는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쓸 생각입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