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명의 ‘총알 사나이’가 탄생했다.
미국의 저스틴 게이틀린(24)은 13일 카타르 그랑프리대회 남자육상 100m에서 9초 76으로 세계신기록(뒷바람 초속 1.7m, 섭씨 28도)을 세웠다가 나흘만인 17일 국제육상연맹(IAAF)에 의해 9초 77로 수정됐다.
IAAF는 게이틀린의 기록이 9초 766였는데 이를 반올림 하지 않고 9초 76으로 발표해 오류가 생겼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6월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세운 9초 77과 타이기록.
한국남자 100m 기록은 1979년 9월 멕시코시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서말구(51·현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세운 10초 34. 1초에 9.67m로 달려 게이틀린에 초당 57cm씩 뒤처진다. 100m 전체로 보면 5.89m가 뒤지는 셈이다. 게이틀린이 100m 결승테이프를 끊었을 때 서말구는 94.11m에 와 있는 셈이다.
게이틀린은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185cm, 83kg의 흑인. 국내 랭킹 1위 전덕형(10초 51·22·충남대)의 체격(185cm, 75kg)과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다. 키는 똑같고 몸무게가 8kg 더 나갈 뿐이다. 아시아 100m 신기록(1998방콕아시아경기대회 10초 F) 보유자 일본의 이토 고지는 182cm, 72kg의 체격으로 오히려 전덕형보다 작다.
한국기록 10초 34는 세계기록으로 치면 1930년(캐나다 퍼시 윌리엄스의 10초 3) 수준. 한마디로 한국 남자 단거리는 76년 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1979년 서말구가 기록을 세울 당시 세계기록은 9초 95로 한국기록에 0.39초 앞섰다. 하지만 한국기록과 세계기록의 차는 0.57초나 된다. 왜 한국 단거리는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을까.
한마디로 지도자 문제라 할 수 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누가 뭐래도 단거리 세계 제일의 지도법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1912년 이후 남자 100m 세계신기록을 거의 독식해 오고 있다. 1912년 이후 비(非)미국인 출신이 세계남자 100m 기록을 깬 것은 4번에 불과하다. 파월을 비롯해 1930년 퍼시 윌리엄스, 1960년 아르민 해리(독일), 1996년 도너번 베일리(캐나다)가 그들이다. 흔히 ‘동양인은 동양인에게 맞는 주법이 있다’며 미국식 훈련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미국 단거리 스타들은 모두 각각의 고유한 주법이 있다. 그만큼 선수 특성에 맞게 ‘맞춤 주법’을 개발한다.
게이틀린의 뒤엔 ‘인간탄환 제조기’로 유명한 트레버 그레이엄 코치가 있었다. 파월도 그의 조국은 자메이카지만 그가 단거리 지도를 받았던 곳은 미국이었다. 파월은 1999년 형을 따라 텍사스로 건너와 훈련했다. 그는 그곳에서 자메이카 출신 코치 스티븐 프랜시스의 조련을 받으면서부터 눈에 띄게 기록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1999년 6월 9초 79로 당시 세계신기록을 세웠던 모리스 그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거리 학교 HSI 소속이다. HSI는 변호사이자 에이전트인 이매뉴얼 허드슨과 단거리 명코치 존 스미스가 1996년에 로스앤젤레스에 설립한 클럽이다. 일명 ‘스미스 스쿨’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흑인들 엉덩이는 동양인들에 비해 빵빵해 그만큼 단거리에 유리하다. 흑인들은 허벅지 뒤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부분이 늘씬하고 팽팽하다. 바로 이 ‘빵빵한 엉덩이’에서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이 분출된다. 학자들은 이 ‘빵빵한 엉덩이 근육’을 ‘파워존’이라고 부른다.
한국선수들은 대부분 파워존이 부실하다. 그만큼 하체 근력이 약하다. 중반 이후에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세계적 스프린터들은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2∼5% 밖에 되지 않으나 한국 선수들은 50∼60m지점 이후 감속률이 10%에 이른다. 하지만 순발력은 흑인들에 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스타트가 늦다. 세계적 선수들은 출발반응시간이 0.1∼0.2초 정도지만 한국선수들은 0.3초가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왜 그런가. 뭔가 지도법에 문제가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지난해 일본인 코치 미야카와 지아키 씨를 영입해 전덕형을 맡겼다. 동양인의 특성을 잘 아는 그를 통해 27년 동안 요지부동인 한국기록을 깨 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야카와 코치는 아시아기록 보유자 이토 고지를 기른 사람이다. 아무리 잘해봐야 10초F를 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일본 단거리는 아시아에선 몰라도 세계무대에선 늘 밀려나 있다.
무엇이든 세계최고 눈높이에 맞춰야 그 턱밑까지라도 따라갈 수 있다. 2등한테 배우면 10등도 어렵지만, 1등한테 배우면 5등도 가능하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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