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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월드컵!]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입력 | 2006-05-20 03:01:00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 설치된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그는 축구도 춤꾼처럼 흥겹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동률 기자


가난한 소년은 축구를 잘했다. 축구공이 없어 돼지 오줌보를 찼지만 황해도 은율 일대에서 소년만 한 발재간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백기완(73) 통일문제연구소장.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바쳐 온 그는 축구와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했다.

열세 살 때. 서울에만 오면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을 줄 알고 상경했지만 가진 건 몸뚱이가 전부인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유니폼 입은 선수들을 보고 따라갔다 몰매를 맞았고, 그 학교 교장을 찾아가 받아 달라 사정했지만 다시 끌려 나와 또 매를 맞았다. 그때 그는 결심했다. 재주와 뜻이 있어도 돈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잘못된 세상을 발로 차는 ‘진짜 축구’를 해 보겠다고.

6·25전쟁 때 피란길에는 빨갱이로 몰려 헌병대에 끌려갔지만 축구를 좋아했던 수사관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풀려날 수 있었다는 백 소장. 그에게 태극전사들은 각별하다.

“한번은 이천수가 나를 찾아왔어. 그때 내가 덧이름(별명)을 ‘미꾸라지’라고 붙여 줬지. 어떤 수비도 뚫을 수 있는 진짜 미꾸라지 같은 선수가 되라고. 박지성은 한눈 안 팔고 축구만 하는 것 같아. 그래서 좋아.”

축구장 푸른 잔디만 보면 그 옛날 맺혔던 한이 다시 생각나 울고 싶다는 그에게 선수들한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청했다. 백 소장의 목소리가 커진다.

“축구 선수는 둥근 공만 차는 게 아냐. 잘못된 둥근 땅별(지구)도 함께 차는 것이 진짜 축구야. 그런 깨달음을 갖고 뛰어야 해. 목표가 16강? 재수 없게 16강이 뭐야. 딱 한방, 딱 한방에 온∼몸을 실어. 그러면 으뜸갈 수도 있어. 그게 축구야.”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