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는 미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化汀)평화재단,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미중일 4개국 전문가 30여 명이 참석한 7시간의 토론이었다.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추이리루(崔立如) 원장이 첫 발표를 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누가 우리의 적(敵)이고 누가 우리 편인가, 이것이 혁명의 가장 중요한 문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미중(美中)관계에 있어서 적이냐 아니냐를 명확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적으로 여기지만, 중국은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춘 국가전략상 안정적 평화적 국제관계가 중요하므로 미국에 대해 수세적인 상황을 수용한다. 중국인들은 미국이 국제적으로 패권((패,백)權)정치를 하고 있다고 보지만, 중국이 경제의 고도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을 염두에 두고 미국에 접근한다.”
최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미국에 가서 수모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지만 중국은 미국에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다. 국익을 위해서는 마오의 어록도 스스로 부정(否定)하는 현실주의, 실용주의다.
일본 도쿄대 다카하라 아키오(高原明生) 교수는 미일(美日)동맹에 대해 ‘지나친 밀착’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주일(駐日)미군은 지역안정에 크게 기여하지만 미일 안보협력이 너무 급하게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일본 기지를 활용하도록 조약이 바뀌고, 일본이 중동(中東)에서까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본이 유엔을 통하지 않는 군사력 행사에 발을 담그는 것은 불안하다. 미일 안보관계가 대등(對等)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만 일본의 대미 종속성이 심화돼 지휘체계의 통합화, 일원화로 가는 것이라면 이는 나라의 근간(根幹)을 건드리는 문제다.”
마침 미일은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최신예 요격미사일을 일본 기지에 올해 배치하기로 했다. 다카하라 교수가 말한 ‘일본인의 불안’은 한미(韓美)동맹의 급속한 이완이 낳고 있는 ‘한국인의 불안’과는 반대 방향이다. 한국에는 ‘일본 군사력의 본격 대두’가 또 하나의 불안요소로 추가된다.
미국 컬럼비아대 제럴드 커티스 교수는 미 공화당과 민주당의 아시아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식에는 문제가 많지만 기본전략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별 차이가 없다. 9·11테러 이전의 미국은 한국을 도와줘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이라고 봤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동맹’의 정의(定義)가 ‘서로 돕는 나라’로 바뀌었다. 누가 대통령이라도 미국을 돕지 않는 나라는 동맹국이나 우호국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억지력(抑止力)만으로는 안 된다는 선제공격 독트린도 같다. 또 어느 당이나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추구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미국에 현실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국과 합의한 프레임워크(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는 생각도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같다. 북한은 부시 정권이 끝나면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커티스 교수는 공화당 네오콘 그룹과는 거리가 멀고 민주당 성향에 가까운 학자다. 그는 “민주당도 일본의 군사적 역할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일동맹 강화가 (공화당 쪽) 리처드 아미티지 보고서에 따른 것이라고들 하는데, 원래 양당이 다 참여한 아미티지-조지프 나이 보고서였다. 민주당이 집권했다면 ‘나이 전략’이라고 말만 바꿔 미일동맹을 확대했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태평양의 영국이 되라’고 주문한다.”
미국의 동맹관(觀) 변화와 한일(韓日) 차별화, 일본 군사력의 불투명한 전개, 중국의 지역패권 추구 사이에서 한국은 어떻게 위험관리를 하고 있는가. 미국을 돕지 않는 나라는 동맹국으로 볼 수 없다는 미국, ‘패권국 미국’에는 굽히면서 한반도엔 동북공정을 펴는 중국, 국가주권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미국에 편승한 일본, 북한과 손잡고 미국에 대항하자는 세력이 활개 치는 한국…. 이 중에서 가장 작고 외로운 나라가 한국이다.
배인준 논설 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