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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방송에 업혀가는 출판계?

입력 | 2006-05-24 03:03:00


최근 가장 많은 단행본이 쏟아진 주제를 고르라면 단연 주몽이다. 5월 들어 지금까지 주몽을 소재로 한 책이 11종이나 출판됐다.

‘소설 주몽’(열매) ‘정설 주몽’(늘봄) ‘고구려를 세운 주몽’(마야) 등 비슷한 제목에, 요즘은 ‘주몽의 연인, 소서노’(세시) ‘여제 소서노’(현대문화센터) 등으로 주제가 확장되는 추세다. 대동소이한 내용인 데다 어떤 출판사는 4년 전 발간된 책을 제목만 ‘주몽’으로 바꿔 다시 펴내기도 했다.

쏟아져 나온 주몽 책들은 MBC TV 창사특집극 ‘주몽’의 영향권 안에 있다. 15일 처음 방송된 이 드라마는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면서 일일 시청률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들 책 중에서 기획 단계부터 책과 드라마가 ‘원 소스 멀티 유즈’ 개념으로 기획돼 나온 책은 ‘주몽’(황금나침반)뿐이다.

김기중 황금나침반 대표는 “지난해 9월 드라마 작가 최완규 씨 등과 소설과 드라마를 동시에 집필하기로 계약했다”면서 “드라마 제작 사실이 일찍 알려진 탓인지 주몽 책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인기 드라마에 발을 걸쳐놓는다고 해서 책 판매에 도움이 될까. 한 출판사 대표는 “특별히 잘 팔린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출도는 높아진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주몽 관련 책만 모아놓은 판매대를 별도로 설치했다. 또 한 출판사 사장은 “신간이 한 주 100여 권 쏟아지는 시장에서 독자의 눈에 띄려면, 얕은 기획이라고 비난받아도 ‘뜨는 방송’에 업혀가기를 외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몽뿐만 아니라 영화 ‘다빈치 코드’의 개봉에 발맞춰 ‘유다의 사라진 금서’ ‘영지주의’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등 이단을 소재로 한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몽 다음은 배용준이 주연을 맡아 촬영 중인 드라마 ‘태왕사신기’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돌고 있다. 책의 기획을 결정하는 큰손이 요즘은 방송과 영화다.

출판이 유행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 자체가 나쁠 건 없다. 그러나 방송과 영화의 일정에 맞춰 같은 주제를 다룬 대동소이한 책이 쏟아지는 현상은 우리 출판계 풍토의 얄팍함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