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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물샐틈 없는 질주…블록버스터 ‘포세이돈’

입력 | 2006-05-25 03:03:00

재난영화의 고전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리메이크한 영화 ‘포세이돈’. 이 영화는 원작이 가졌던 사유의 깊이를 버리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시각적 쾌감에 집중한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 특수효과 롤러코스터 압권

스피드. 이건 영화 ‘포세이돈’에 있어서 ‘양날의 칼’ 같은 요소다. 한 번 올라타면 끝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영화는 상승과 하강을 미친 듯이 반복한다. 짜릿한 경험을 영화는 선물하지만, 그 와중에 정작 ‘인간’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때는 12월 31일. 북대서양을 항해 중인 초호화 거대 유람선 포세이돈에선 연말 파티가 한창이다.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배는 엄청난 규모의 파도에 휩쓸려 가라앉기 시작한다. 아비규환 속에서 프로 도박사 딜런(조시 루카스)은 시장 출신의 로버트(커트 러셀)와 그의 딸 제니퍼(에미 로섬), 그리고 제니퍼의 남자친구 등과 함께 거대한 선체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재난 영화의 고전인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를 볼프강 페터슨 감독이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이상의 무엇을 기대한 게 사실이다. 볼프강 페터슨이 누군가. 바다를 주 무대로 한 대형 영화에 달관한 감독이다. 그를 출세시킨 ‘특전 U보트’(1981년)가 그랬고, 거대한 파도와 싸우는 바다남자들의 모습을 담은 ‘퍼펙트 스톰’(2000년)이 또한 그러했다.

페터슨의 이런 행적에 비춰볼 때 31일 개봉되는 ‘포세이돈’은 절반의 성공이다. 좌초 위기에 처해 상하좌우가 완전히 전도된 선체 내부 공간은 야릇한 시각적 쾌감과 함께 아찔한 스펙터클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밀려오는 바닷물은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탈출을 시도하는 인물들의 발뒤꿈치를 졸졸 따라오면서 보는 이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정말 이 영화,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영화 시작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출발선을 끊고 나가는 딜런 일행의 탈출기는 그 뒤 98분짜리 영화가 막을 내릴 때까지 단 1초도 쉬어가질 않는다. 배의 거대한 외관을 과시하기 위해 동원된 컴퓨터 그래픽(CG)은 종종 ‘가짜’의 티를 드러내지만, 이후 선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고와 사고의 연속은 특수효과와 CG에 힘입어 거의 ‘호러’ 영화 수준의 사지절단 비주얼을 보여준다.

○ 죽음 상품화하며 ‘고뇌’도 침몰

하지만 1분도 지루한 걸 참지 못하는 현대 관객을 위해 몰아치고 또 몰아치는 이 영화의 미친 속도감은 정작 귀중한 생각거리를 증발시켜 버렸다. 사실, 1972년에 제작된 원작은 참 생각할 만한 여지가 많은 영화였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인간들이 벌이는 갈등과 선택이라는 한계상황의 문제에서부터, 신(神)에 대한 인간의 도전 같은 운명론의 문제까지 사유해 보게 만들었던 원작의 심오함에 비해 이 리메이크 작품은 그냥 ‘끔찍하고 신나게’ 질주해 나가면서 최고 수준의 시각적 쾌감을 선물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결국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형성될 만큼 충분히 이야기의 결을 쌓아가지 못하는 영화는 본능만 남아 움직이는 처절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아낼 ‘짬’을 갖지 못한다. 이렇듯 등장인물의 인성적 존재감이 흐릿한 탓에 하나 둘 닥쳐오는 인물들의 죽음은 관객의 가슴에 안타까운 상흔을 남기지 못한 채 무슨 기성 상품의 고장처럼 대수롭지 않게만 여겨진다.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