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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제로 톨러런스’

입력 | 2006-05-25 03:03:00


미국 워싱턴 근교의 초등학교에 아들을 보낸 한국인 현지 주재원이 담임교사의 긴급호출을 받았다. “정학입니다. 학교 반입 금지 물품을 갖고 왔어요.” “그럴 리가…. 뭘 갖고 왔다는 겁니까?” 손톱깎이였다. 아이가 쉬는 시간에 손톱이나 깎겠다고 무심코 넣어간 손톱깎이엔 손톱을 다듬는 뾰족한 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정학이라니!

▷미국 학교는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정책을 쓰고 있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학창시절 학교에 있느냐, 길에서 헤매느냐에 달렸다”며 무단결석을 엄히 다스리게 했다. 학부모는 금지행동과 금지품목이 적힌 교칙을 살피고 서명해야 한다. 뉴욕 시에선 교사에 대한 불경(不敬)도 용납하지 않는다. 좀 심하다는 지적에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피해자를 생각해 보라”며 일축했다.

▷일본 정부가 의무교육 과정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미국식 제로 톨러런스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1998년 이후 매년 3만 건씩 터지는 학생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다. 최근엔 고교생이 교내에서 마약을 파는 사건이 일어났고,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학급 붕괴’도 끊이지 않는다. 영국에선 1999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미국 시카고에서 최악이었다는 학교를 방문해 보고 ‘문제학생 영구추방 정책’을 강화했다. 시카고에 제로 톨러런스 제도를 도입한 뒤 교내 폭력이 절반으로 줄고 학업 성적도 올랐다는 거다.

▷제로 톨러런스는 사소한 일탈행위 방치가 더 큰 범죄를 부추긴다는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이론’에 근거를 둔다. 이 제도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사전에 규칙을 분명하게 알리고, 처벌 과정이 공정하며, 처벌받은 학생을 위한 ‘갱생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가 학교답고, 교사가 교사다워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권위를 잃은 공교육이 교권(敎權)만 강조하는 것도 비교육적이다. 한국의 경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