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이 발생했을 당시 두 나라 금융당국과 정부는 상반된 대응을 했다. 결과도 크게 다르다.
미국에서는 지난 5년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매년 급등했다.
이에 대해 미 정책당국자들은 조심스러운 발언으로 연착륙을 유도했다.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집값이 20∼30%까지 내릴 것’이라는 식의 과격한 표현은 삼갔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해 의회에서 “전국적 규모의 버블 움직임은 없으며,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프로스(froth·작은 버블)’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당시 ‘froth’라는 단어는 ‘미니 버블’을 가리키는 말로 화제가 됐다.
또 FRB는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저금리가 부동산 폭등의 주원인으로 꼽혀 왔기 때문이었다. 최근 금리인상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들은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식의 단정적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18일 “주택 가격이 질서 있고 적절하게 진정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경제전문 케이블TV인 CNBC의 여성 앵커와 나눈 사적 대화가 1일 보도되면서 금융시장이 출렁거린 데 대해 “말조심하겠다”며 23일 상원 청문회에서 사과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금융 토지 세금정책을 총동원해 마구잡이식 거품 터뜨리기에 나섰다. ‘땅값 잡기’가 국시(國是)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부터 1년 3개월 동안 5차례에 걸쳐 금리를 3.5%포인트 올렸다.
‘지나친 금리인상은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지도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일본은행은 1991년 7월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금리인하 정책으로 돌아섰지만 일본 경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붕괴 소용돌이에 휩싸인 뒤였다.
1990년 4월 대장성은 더 충격적인 조치를 내놨다. 부동산 융자 총량규제 정책을 도입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자금을 꽁꽁 묶은 것.
대장성은 이 정책을 1992년 1월 폐기했으나 도쿄(東京) 교외의 주택지는 하락률이 이미 두 자릿수를 나타내고 있었다.
또 일본 정부는 1990년 12월 ‘지가(地價)세’를 신설했다. 지가세는 적용 첫해인 1992년 유통업계의 경상이익 중 20%를 거둬갈 만큼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을 줬다.
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와 금융당국의 이 같은 ‘뒷북 과잉 대책’이 일본 경제를 10년 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은 도화선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