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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잡는다면 뭐든…’ 위험한 다걸기

입력 | 2006-05-25 03:03:00


금융감독원 김중회 부원장이 23일 “부동산 값이 50% 떨어져도 금융기관은 문제가 없다”고 말하자 당사자인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회사 종사자들은 깜짝 놀랐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김 부원장은 은행이 부동산 시가의 60% 이하로 담보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부동산 값이 급락해도 경제에는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부동산 값 하락은 ‘제2금융권→은행→가계’의 순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상식인데 정책 당국자가 그런 말을 하다니 희한하다”고 했다.

김 부원장의 발언은 현재 청와대와 경제부처들이 부동산 값을 잡기 위해 후유증을 감안하지 않은 채 얼마나 전력투구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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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걸기’ 부동산 정책은 위험하다

청와대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금감원 고위 인사들은 이달 들어 거의 매일 강도 높은 부동산 버블 발언을 쏟아내며 ‘집값 잡기’에 다걸기하고 있다.

정책당국자들은 언론이 버블 붕괴를 염려하면 ‘웬 호들갑이냐’ 하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담보인정비율(LTV)을 초과해 담보대출을 많이 해 준 상호저축은행 캐피털 보험사 등 제2금융권부터 당장 문제가 발생한다.

은행이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부치면 대출 원금조차 못 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은행 자체가 위험에 빠진다. 외환위기 때 이미 경험했듯이 은행은 리스크가 없다는 믿음은 지나친 낙관이라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

재경부는 최근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하반기에 경기 하강 위험이 강하다”고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값 하락은 소비 위축과 맞물려 경기 둔화를 가속할 수 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18일 브리핑에서 “부동산 값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주가 하락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보다 작다”고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한 부총리의 말은 증명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63∼2003년 10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자산가격과 소비성향을 분석한 결과 소비성향은 주식을 포함한 금융자산보다 집값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잡으려는 강남 3개구 집값보다 지방 아파트 시장이 먼저 침체하는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경희대 이성근(부동산학) 교수는 “정부는 집을 거래하기 어렵도록 세제로 꽁꽁 묶었지만 시장을 억누르는 정책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과거 역효과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 방향으로만 집행된 경제정책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비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면서 2003년 LG카드 사태로 불거진 ‘플라스틱(신용카드) 버블’이 해소되고 있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사실 플라스틱 버블은 1999년 소비 진작을 위해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신용카드 확대 정책으로 생겼다. 한 방향으로 치우친 이 정책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후유증이 생겨 2003년부터 3년여간 한국 경제를 짓눌렀다.

당시에도 지나친 신용확대 정책의 문제점을 경고한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정부는 귀를 막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앙은행의 돈을 풀어서 주식을 띄우겠다”던 1989년 12·12 증시 부양조치가 있다. 이 정책의 결과 1992∼93년 주가가 반 토막 나면서 자살자들이 속출하는 사회문제까지 생겼다.

당시 현장에서 이 정책을 체험한 딜로이트컨설팅 김경준 파트너는 “시장논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정책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한 방향식 정책이 한국경제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며 “부동산 정책에서는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참여연대 김상조(한성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참여정부는 단기적인 시야를 갖고 조급증에 빠진 정책을 펴고 있다”며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더는 기대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 ‘깃발’ 들면 무조건 따라가는 정부 관료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책 수립 초기 단계부터 너무 결과에 집착해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하지 않거나 아예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정책 추진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값 잡기를 들고 나오면서 정부 관료들이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놓거나 강경발언을 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권 초기에 다른 부처에서 대통령 구미에 맞는 정책을 내놓는 것에 대해 번번이 제동을 걸어 미운털이 박혔다는 느낌이 든다”며 “고위관료 인사에서 번번이 배제되는 것도 그동안 ‘코드’를 잘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이 어떤 정책을 선택할 때의 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정책 자체만 도입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다.

울산대 정정길(정치학) 총장은 “선진국 제도가 생기게 된 배경이 한국과 다르다면 그 정책을 도입해선 안 되는데도 무리하게 정책으로 입안하는 사례가 많다”며 “결과에만 집착하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