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철이 되면 우리 연구팀은 제주도 분화구에서 먼지와 숨바꼭질을 벌인다. 사실 계기는 ‘반도체 원판(웨이퍼·wafer)의 불량률이 높아지는 원인이 뭘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흔히 수정이라고 알고 있는 ‘석영’을 연구하면서 분석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애만 태우고 있던 2002년, 반도체 웨이퍼 분석 장비를 새로 들여왔다는 한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다.
연구소 관계자는 대뜸 ‘황사 때문에 웨이퍼의 불량률이 크게 높아졌다’며 불평을 털어놓았다. 더 큰 문제는 정확한 먼지의 발원지를 모른다는 것. 석영 연구자인 내게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황사에 많이 포함된 석영을 통해 그 근원지를 추적하기로 결심하고 곧장 황사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의 사막지대로 날아갔다.
그렇게 사막을 뒤지기를 2년. 황사 발원지라면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하지만 국내에 쌓이는 황사가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베일 속에 있었다. 경기 남양주시 와 부읍 덕소리, 연천군 전곡읍, 강원 홍천군 등 일부 지역에서 황사 모래층이 발견됐지만 원래부터 있던 모래와 섞여 있어 출처를 알기 어려웠다.
중국에서 불어온 순수한 모래층이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긴 고민 끝에 제주도 화산 분화구와 늪지를 떠올렸다. 화산암 지대인 데다 주변이 바다여서 한반도 상공의 먼지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모래성분을 찾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섬을 찾았을 때 분화구와 늪지에서 섬을 덮고 있는 화산암에서 나온 검은 모래 대신 하얀 모래들이 발견됐다.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온 것이 분명했다.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황사가 쌓인 일본 도쿄 북쪽의 화산지대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제주도 분화구의 흰 모래가 없었다. 제주도의 흰 모래도 어쩌면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흰색 모래의 비밀은 엉뚱한 데 있었다. 때마침 일어난 이라크전으로 황사 연구를 잠시 접고 석유자원 분야로 관심을 돌려 시추공을 조사하러 제주도로 갔다. 시내를 걷다 숙소 앞 보도블록에 우연히 시선이 꽂혔다. 화산암으로 만든 검은 보도블록 사이에 껴 있는 흰색 블록이 유난히 눈에 띈 것.
그랬다. 분화구와 늪지에서 발견된 흰 모래는 바로 육지에서 가져온 공사용 흰색 골재가 날아 들어가 쌓인 것이었다.
어쩌면 세계적인 자원전쟁 앞에서 황사는 ‘뭐 이쯤이야’라며 쉽게 넘겨 버릴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봄만 되면 서풍이 심하게 불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출처를 알 수 없는 먼지와의 숨바꼭질을 고대하며 말이다.
권영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kwon@kiga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