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27일(현지 시간) 인구 15만 명의 스위스 북부 작은 도시 바젤에서 스위스와 코트디부아르의 평가전이 열렸다. 오후 5시 30분 경기였지만 시내는 낮 12시부터 붉은색 스위스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후 2시경 경기장에 도착하니 이곳도 어느새 붉은색 물결이었다.
갖가지 희한한 장식으로 치장한 젊은 팬들. 3대가 함께 축구장으로 나들이 온 가족들. 보험회사 직원인 데겐 하인츠 씨는 “조카 친구들과 함께 60km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원정 왔다”며 신이 나 있었다.
이날 3만 석 경기장은 가득 차지 않았다. 그러나 2만2000여 명으로 집계된 관중의 열기는 대단했다. 팬들은 박자에 맞춰 호프 스위츠(Hopp Switz·‘가자 스위스’라는 뜻의 고유 응원구호)를 외쳤다.
경기장 한쪽에는 1000여 명의 코트디부아르 팬들이 녹색 유니폼을 입고 경쾌한 아프리카 춤에 북을 두드리며 자유분방하게 응원했다.
이날 경기는 1-1로 비겼다. 내용은 훌륭했고 양쪽 팬 모두 만족했다.
경기가 끝나고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첼시)가 출입통로로 나가는 순간 흑인 여성 팬 한 명이 관중석에서 뛰어내려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 여성 팬의 당돌한 몸놀림에 당황했을 법도 하지만 드로그바는 싫은 내색 없이 그를 포옹했고 관중들은 환호했다.
믹스트 존 인터뷰에서도 스위스와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은 기자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성의껏 응답했다.
반면 한국 선수 대부분은 믹스트 존에서 자신을 찾는 기자들에게 이처럼 ‘친절하게’ 응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비기거나 지기라도 했을 때는 입을 꾹 다문 선수들에게 말 붙이기도 힘든 분위기다.
스위스의 선제골을 터뜨린 트랑퀼로 바르네타(레버쿠젠)는 경기장 밖에서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바르네타는 자신을 연호하는 팬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했다.
한 팬에게 “바르네타 팬클럽이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모두 바르네타의 친구”라고 답했다.
우리는 언제쯤 스타 축구선수가 ‘친구’인 팬들에게 둘러싸여 자연스럽게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축구는 스위스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에너자이저’였고 팬 없이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아는 선수들은 아낌없이 행복을 전해 주고 있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이나 한일전 때만 불붙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이제는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축구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기자는 이 작은 나라, 작은 도시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
바젤=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