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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떨군 김우중 전 회장…추징금 실효성 논란

입력 | 2006-05-30 19:27:00


법원은 김우중(69)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 예상을 뛰어넘는 중형을 선고해 경제사범에 대한 사법부의 엄단 의지를 내비쳤다. 선처를 기대했던 김 전 회장은 선고 직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례적 중형= 법원은 이른바 대우사태의 책임이 총수인 김 전 회장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20조 원대 분식회계와 9조8000억원의 사기대출 △해외 비밀계좌를 통한 재산 국외밀반출 △계열사 부당 지원 등의 혐의가 모두 김 전 회장의 지시로 이뤄졌고, 김 전 회장이 임원들에게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고 봤다.

선고 직전까지 법원 안팎에선 김 전 회장이 고령이며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선처를 예상했다. 김 전 회장 측도 대기업 총수들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던 선례가 적용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의 혐의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 전제인 경제 구성원간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이로 인해 국민 상당수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중형을 선고했다.

2월 두산 비자금 사건 관련자 전원에 대한 1심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를 이용훈 대법원장이 강하게 비판한 이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한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당시 "절도범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기업범죄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다면 국민이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개 떨군 김 전 회장=김 전 회장은 공판 시작 15분 전인 오후 1시 45분경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다 법원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환자복 차림으로 피고인석에 섰다. 200석 규모의 방청석은 가득 차 서 있는 방청객도 있었다.

그는 재판 진행 중에도 링거주사를 맞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남식 주치의와 간호사 2명이 법정에서 대기했다.

김 전 회장은 재판부의 선고가 끝나자 고개를 떨궜다. 그는 방청석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법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법정을 나갔다. 김 전 회장은 차에 타기 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추징금 실효성 논란=재판부는 김 전 회장에게 역대 최대 규모인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부과했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2205억 원, 노태우 전 대통령은 2629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 추징금은 김 전 회장이 한국은행 등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빼돌린 돈(157억 달러, 40억 엔, 1133만 유로)과 해외 법인의 돈을 국내로 반입하지 않은 돈(32억 달러)를 합친 액수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같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대우 임직원 7명과 함께 이 추징금을 공동 부담하면 된다. 각자 부담액은 8명이 임의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실제 이 돈을 징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추징금을 집행하는 검찰은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집행2과 직원 5명으로 '대우 추징금 대책팀'을 구성했지만 최근까지 징수한 돈은 장병주 전 ㈜대우 사장의 급여에서 압류한 5200여만 원 등 총 6023만3000원에 불과하다.

대책팀은 김 전 회장이 1990년 7월 가족을 위해 미국 보스턴에 80만 달러를 들여 주택 한 채를 사는 등 재산을 국내외에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 측은 전 재산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해 빈털터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등 채권기관도 김 씨에게 받을 돈이 적지 않아 검찰의 추징금 징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정효진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