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호(중앙대 교수·법학) 친북반국가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과거사 정리는 필요하지만 모든 공안사건이 민주화 운동을 용공사건으로 날조한 것처럼 호도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강병기 기자
《제성호(48·법학) 중앙대 교수는 직함이 많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자유민주연구학회 회장, 한반도포럼 회장…. 최근 여기에 직함 하나가 추가됐다. 친북반국가행위 진상규명위원회(친북규명위) 위원장. 25일 공식 출범한 친북규명위는 순수 민간단체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20여 개나 만들어진 정부 주도의 각종 과거사위원회와는 성격이 판연하게 다른 것이다.》
“현 정부가 지난 100년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광복 60년이 지났으니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역사 다시 쓰기가 너무 좌편향한 것이 문제지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우리 헌법정신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편향성을 바로잡겠다는 겁니다.”
제 교수는 특히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사회주의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탈취해 보관한 남민전 사건과 경찰관 7명을 사망케 한 부산 동의대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과거 공안기구들이 대공 수사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했다면 그것은 물론 잘못이므로 시정되고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각종 과거사위가 인권 침해에 초점을 맞추면서 마치 과거 모든 공안사건이 민주화 운동을 용공 사건으로 날조한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체제수호 활동을 곧 반(反)인권행위로 등치시키고, 엄연한 친북 반국가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교수는 공안 사건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에 선후 관계가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남한을 적화하려는 북한의 대남전략이 분명 엄존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체제 전복을 시도한 친북세력이 분명 존재했는데 이를 외면하고 수사과정에서의 고문과 가혹행위만 부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대한민국 과거사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즉 △대한민국 역대 정부가 이룩한 과거사 △북한이 행한 대한민국 체제 전복 내지 대남전략의 과거사 △북한의 대남전략에 영합, 동조한 친북사회주의 세력의 반국가행위의 과거사 △친북행위를 억제·처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공안활동의 과거사다.
그런데 현 정부는 첫 번째 과거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말로 폄훼하고, 네 번째 과거사에 대한 청산작업에 주력하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과거사에 대해서는 외면 내지 최소주의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던 빨치산과 간첩을 민주화 운동가로 둔갑시키면 이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던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이런 식이면 대한민국은 체제 수호를 스스로 부정하는 무장해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과거사위라는 것이 대부분 행정위원회에 불과한데 무슨 권리로 사법부에서 용공이라고 최종 판결한 내용을 재심 절차도 거치지 않고 뒤집는다는 말입니까.”
친북규명위는 1차적으로 남민전 사건과 인혁당 및 인혁당재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학자와 과거 공안 전문가, 전직 언론인으로 전문위원단을 구성하고 해당 사건의 공소장과 판결문 그리고 행정정보 공개 신청을 통해 해당 과거사위의 조사내용을 검증하겠다는 것. 이어 수사관, 사건 당사자, 유족과의 면담조사를 바탕으로 잘잘못을 가린 뒤 이를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사건 관련자나 유족이 구속력도 없는 친북규명위의 면담조사에 응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분들이 응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진상 규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절차를 밟을 것이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수사과정에서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밝힐 생각입니다.”
그는 올해 안에 두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는 통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에 대한 조사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 교수는 이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위해 7월경 1920∼1990년대 공산주의운동의 계보와 공안사건의 역사를 정리하는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 교수는 “법학을 전공한 내가 어쩌다 과거사위에 끌려 다니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돈도 안 되고 정부가 하는 일에 발목 잡는 꼴인 일에만 말려들어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없을 만큼 바쁘다. 하지만 세계에서는 모두 칭찬하는데 유독 한국 내부에서만 욕먹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안쓰러워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