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를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어제 밝혔다. 그러나 정작 참패의 원인인 ‘정책 실패’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고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엇나가는 말을 했다. 민심을 받들기는커녕 국민의 속을 뒤집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방송사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절반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 실패’를 민심 이반의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80%를 위한다며 20%를 때리는’ 좌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으로 일자리를 날리고 빈곤만 확산시킨 실정(失政)을 표로 심판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엉뚱한 소리나 하고, 정부 여당은 여전히 ‘대통령 코드’에 맞추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청와대는 기존의 국정 운영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규제, 중(重)과세 위주의 부동산 정책, 하향 평등교육 등 국가경쟁력 추락과 민생 파탄을 불러온 코드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선거를 의식해 연기한 증세(增稅) 위주의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세금을 더 짜내 포퓰리즘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받들려면 공허한 구호를 버리고 효율과 성장의 실용적 코드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한다며 세금을 더 걷고, 집값을 안정시킨다며 시장을 때려잡는 반(反)시장 정책은 민생만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지역 균형을 외치며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면 서민을 위한 일자리만 줄어든다. 기업에 사회공헌금에다 양극화 해소 비용까지 떠넘기면 투자가 안 되고 산업공동화(空洞化)가 가속된다.
이제라도 시장원리에 순응하는 합리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분배도 개선된다는 것이 세계의 공통된 경험이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등 여당 지도부도 사퇴만이 능사가 아니다. 국정 운영의 실패에 대한 공동 책임을 통감하고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경제 살리기를 돕는 일도 대통령과 여권(與圈)의 몫이다. 지방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중앙정부가 통제와 위협으로 시장을 위축시키면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 각종 규제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위임해 지자체 간에 경제 살리기 경쟁이 벌어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런 정책들이 공기업 몇 개를 지방에 이전하는 것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훨씬 큰 도움이 된다.
노 대통령은 이제 선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남은 1년 9개월의 국정운영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이번 선거 참패의 교훈을 살려, 민심을 거스르는 역주행을 제발 멈추기 바란다.